묵상자료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참 뜻(?) / 마 21:12-22.

박성완 2019. 12. 3. 01:27

묵상자료 6774(2019. 12. 3. 화요일).

시편 51:14-16.

찬송 14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공기를 흔들어 놓는 소리, 세상의 모든 빛을 반사하는 소리. 시에서 흔히 묘사하는 것처럼, 결코 정겹거나 고요한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웅웅 땡그랑, 웅웅 땡그랑. 눈이 내리는 소리는 제법 요란했습니다. 어쩌면 눈 결정들이 한데 뭉치느라고 부딪히며 내는 소리라서 그랬을 지도요. 눈송이는 눈 결정들의 덩어리. 눈 결정은 대기 중의 수중기가 결빙 온도에서 응결해 가거나, 작은 얼음 결정이 응축되면서 만들어 집니다. 결정들은 제각각 증기 분자를 모으면서, 점차 거미줄처럼 투명하고도 아름답게 짜이는 육각형 모양으로 발전을 하지요. 눈송이는 그렇게 눈 결정들이 서로를 껴안아서 만들어 진 하나의 덩어리. AB를 만나서 AB 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C를 만들어 내고. 그렇게 하나가 된 모습은 어느 것 하나도 똑 같은 것이 없습니다. 바늘 모양, 육각형 모양, 나뭇가지 모양. 전부다 다릅니다. 그러나 이런 눈의 신비는 공기를 흔들고 세상의 모든 빛을 반사하며 내리는 동안에만 유효할 뿐, 땅에 닿으면 그 형태가 흐트러지면서 낟알 모양이 되어버립니다. 그건 마치 사랑의 신비와 많이 닮았습니다. 사라 에밀리 미하노의 소설 [눈에 대한 백과사전]을 다시 꺼내서 읽어봅니다. 이런 대목이 들어 있네요. “많은 방식에서 우리는 완벽한 조화를 이룬 눈결정의 가지들 같았습니다. 서로가 상대방이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건 우리 사이에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에너지였습니다. 그 때 우리는 루소가 투명성으로 표현했던 두 사람 사이의 총체적인 감정적 친밀감, 서로를 결합상태로 이끄는 아주 귀하고 드문 의사소통을 이룬 것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혼으로 듣는 언어를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우리의 눈에 속기도 합니다. 당신은 달 표면에 있는 추위의 바다나, 순백의 북극곰이나, 나비의 날개처럼, 그렇게 늘 투명하게 나를 보지는 않을 것이며, 나의 내면이 모두 당신을 향해 열려 있음을 늘 보지도 못할 겁니다. 나 또한 당신이 흰 빛으로 쓰여진 나의 행복임을 늘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며, 당신에게 도달할 힘을 얻으려고 내가 희망의 날개를 펼치고 있음을, 늘 깨닫지는 못했을 겁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126일 방송>

 

2. “성전 뜰에서 쫓겨 난 상인들(12-17)”저주 받은 무화과나무(18-22)”을 읽었습니다. 이른바 성전 청결이라는 주제로 읽혀지는 첫 번째 본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을 파는 상인들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성전세인 반세겔을 바치기 위한 환전소가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이 반세겔은 성전에서만 통용되는 때문에 일반 시중에서는 구할 수가 없도록 되어서 반드시 성전 안뜰에서 다른 제물들을 구입하듯 바꿔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느 시장처럼 호객행위며 값을 깎아 보려는 소리들이 요란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전 본래의 정신이 장삿속으로 변질되고 있는 현상을 꾸짖으신 내용입니다. 오늘은 둘째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이른바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향하신 주님께서 조반을 하지 않으셨던지 시장해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는데, 열매가 없자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는데, 나중에 돌아오는 길에 살펴보니 그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어있더라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훗날 말이 무성해진 일화가 되었습니다.

   본문을 예수님의 어록집인 Q자료라고 학자들은 분류하는데, 평행귀인 마가복음 11:13에 의하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은 것은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화과 열매가 맺힐 때가 아니었으니 당연히 열매를 찾을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때도 아닌 나무에서 열매를 찾았고, 찾을 수 없자 저주를 내린 것은 잘못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억울하게 저주를 받았다는 말이 됩니다. 얼마나 시장하셨으면 화가 났을까?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저주를 퍼 부으셨을까? 학자들은 무화과가 1년에 두 차례 수확을 하는데 5-6월에 수확하는 비쿠라와(28:4), 8-9월에 수확하는 트에나가(48:32) 있는데, 마가복음서가 말하는 열매철이 아니라는 말은 트에나를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주님께서 시장 끼를 이기지 못하시고 화를 내신 일이나 저주하신 일은 아무리 맞춰보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대목입니다. 다만, 이 일화를 통해서 주님은 의심치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 일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교훈을 주신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