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우리들 삶의 한 복판에 함께 계신 주님. / 요 6:15-27.
묵상자료 6805호(2020. 1. 3. 금요일).
시편 59:1-3.
찬송 40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속에 스며드는 따뜻한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당당하게 혼자 살며 꼼꼼하게 일상을 기록했던 그녀. 2년 밖에 살 수 없을 거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돌아오는 길, 강렬한 초록색 스포츠카를 사서 드라이브를 하고 갑자가 일상이 알차게 변했다고 외치고, 인생은 번거롭고 힘들지만 밥을 먹고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 화를 내건 웃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라면서, 경쾌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자식이 뭐라고] 이런 제목을 붙여 시리즈로 출간한 책들을 봐도,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라고 외치는 그녀의 마음이 전해지는데요. 2010년에 세상을 떠난 일본의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산호요코의 이야기입니다. 자신도 모르고 살았던 감성을 한국 드라마가 마법처럼 콕콕 찔렀다고 고백하며, 스스로 우탁 호임을 고백하는 모습에서 무언가를 누군가를 앞뒤 돌아보지 않고 좋아해 보고 푹 빠지는 일 또한 소중하게 느껴지고 어떤 일이 있어도 즐겁고 유쾌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도 좀 생깁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아이 낳고 잠시 쉬었던 때조차 일을 하지 못해서 불안해하던 시절이 있었고, 그렇게 치열한 시간을 지내왔기 때문에 대범하게 인생 별거 아니라고 외칠 수 있었는지 모르지요. 꾸밈없이 당당한 말들이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는, 자신의 부족함이 솔직히 들어내기 때문일 텐데요. 비극적인 일도 비극적이지 않게 놀랄 일도 그다지 놀랍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바로 나이 듦의 미덕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게 더 어렵다는 걸.” 그녀가 남긴 고백과 잠시 마주해 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7년 1월 18일 방송>
2. “물 위를 걸으시다(15-21절)”과 “생명의 빵(22-27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번째 단락입니다. 티베리아 호수 건너편에서 있었던 일화입니다. 아주 오래 전 티베리아 호수를 관광 선박을 타고 건너갔던 기억이 났습니다. 40년 전만해도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 국가들과 무서운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나라를 찾아와 주는 관광객들에게도 그리 친절한 기색이 없었는데, 스무 명 쯤 탈 수 있는 선박도 요즘 서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낚시 배 정도 수준이었습니다. 호수를 건너갔는데도 볼거리는 없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에서 기독교적 유산을 찾아보려는 꿈은 많은 실망을 안겨줍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적인 흔적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을뿐더러, 남아 있는 관광지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마련한 곳들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기억에는 베드로 고기라는 이름의 생선 한 마리를 구워서 파는 것을 별 맛없이 먹었던 일만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앞 호수에서 어느 날 거센 바람과 물결로 인해서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었었다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주님은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에 없으셨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그런데 물결이 사나워지고 배가 요동치고 있을 때, 주님이 물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평행귀인 막 6:49에서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알고 더욱 더 두려워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렘브란트의 <폭풍만난 예수와 제자들>,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 시리즈>에서 잘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둘의 그림을 보면서 제자들보다는 주님께서 더 위태롭게 보였습니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우셨을까 하고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광풍과 태산처럼 몰려오는 파도를 앞에 두고 주님이 태연하게 미소를 짓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위태로운 제자들을 향해서 서둘러 오고 계셨다는 해석을 해 보았습니다. 마구간에 태어나셨을 때나, 십자가를 짊어지셨을 때, 주님은 우리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고통스럽고 힘드셨다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고통당하는 우리들 인생과 공감능력이 떨어질 수 밖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깨우쳤습니다. <Footprint on the sand> 라는 시에서처럼, 주님은 우리가 시련과 역경 중에 있을 때, 동행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업고 계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 역시 우리의 두려움과 무서움을 함께 느끼시면서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