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스승을 바꾼 두 제자들. / 요 1:29-42.

박성완 2020. 1. 15. 00:00

묵상자료 6817(2020. 1. 15. 수요일).

시편 62:5-8.

찬송 13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녁 식사도 맛있고, 모인 사람들과의 대화도 즐겁고, 참으로 행복한 모임이었습니다. 편안한 담소에서부터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얘기며,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해 주는 진지한 상담까지, 몇 시간안의 만남에, 모든 종류의 대화를 다 나눈 느낌이었습니다. 서로가 얼마나 가깝고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역시 사람에겐 사람이 중요하구나, 새삼 또 깨닫게 됐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문득, 자신이 했던 어떤 말이 떠오릅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재미있게만 생각하고 한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모임 속 한 사람에게는 좀 언짢을 수도 있을 수 있게다 싶은 겁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옹졸하다거나 한두 해 만나온 사이가 아닌데도, 내가 실수했던 게 아닐까 싶어집니다. 그렇다고 사과하는 것도 생뚱맞은 것 같고, 결국은 이해하겠지 다음 모임 때 더 잘 해주어야지, 떨치고 다짐하며 넘어갑니다. 어쨌거나 모임 끝내고 돌아오자마자 벌써 다음 모임이 기다려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그런 만남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정말로 사람이 재산이다 싶어집니다. 스위스의 철학자였던 아미엘은 17,000 페이지가 넘는 [아미엘의 일기]로 유명합니다. 그의 일기에도 마음 맞는 사람들과 어울려온 기쁨이 이렇게 표현돼 있습니다. “우정의 즐거움과 상호이해의 매력과, 미에 대한 감탄의 환희와, 안락의 기쁨이 교차되는 모임이야말로, 행복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행복이다.” 19세기의 화가인 오디롱 루동의 그림 <신비한 대화>도 떠오릅니다. 오돌롱 유동은 포도주로 유명한 보르도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외숙부의 집에 보내지지요. 11살 때까지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됐지요. 그러면서 느낀 외로움과 그리움과 상처가 너무나 컸던 것일까요? 화가가 된 그는 인상주의가 주류였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상주의의 너무 밝고 환한 그림에 비판적이었습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연민어린 감정이입 때문인지, 작은 곤충들이며 미생물에 관심이 많았지요. 또 초기엔 주로 석판화에 몰입했는데, 그 탓에 그의 그림들엔 온통 검은 선들과 색채뿐이었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117일 방송>a.

 

2. “하나님의 어린 양(29-34)”예수의 첫 번째 제자들(35-42)”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우리말에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자로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닮아간다는 뜻일 것입니다. 성경에서 제자라는 말은 특정인을 따르는 사람들에 붙여진 이름인데, 가령 모세의 제자들(9:28), 바리새인의 제자들(22:16), 요한의 제자들(11:2)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6:13) 등이 그 예입니다. 이들 제자들은 스승이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반대로 제자가 되고 싶어서 자원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목적은 스승의 정신과 삶을 보고 배워서 그렇게 살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는 일반적으로 크리스천을 제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게 특징입니다(6:1, 9:1, 11:26, 18:23).

   예수님은 자신이 선택한 12명의 제자들을 두셨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스승의 말을 듣고 예수의 제자로 돌아선 특별한 경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먼발치로 지나가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 저기 가신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두 제자는 예수님을 뒤따르게 되었고, 예수님이 머물고 있는 장소에 대해서 궁금해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당신의 삶의 자리로 초대하였고, 하룻밤을 지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찾던 메시야를 만났소.”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은 메시야를 찾고 있었던 사람들로, 요한이 스스로 메시야가 아니라는 고백을 듣고 고민하던 차에, 마침내 그들이 찾던 메시야됨됨이를 예수님에게서 발견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들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였습니다. 스승을 바꾼 제자들의 얘기를 읽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시몬은 게바 곧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더 이상 흔들리지 말라는 의미로 이름을 고쳐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게바,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이니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