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2020. 1. 19. 주현절후 둘째 주일] 왜 주님은 세례를 받으신 것일까? / 마 3:13-17.

박성완 2020. 1. 19. 02:22

묵상자료 6821.

시편 63:8-11.

찬송 13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찬바람이 부는 날, 엄마는 아이의 손을 끌어다 자기 주머니에 넣습니다. 엄마의 온기가 주머니 속에 가득 느껴지는데요. 아이의 언 손은 조금씩 녹아갑니다. 그 주머니는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한지 어쩜 이 겨울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는 주머니와 같은 존재가 되도 좋겠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7115일 방송>

 

2. 주현절후 둘째 주일의 복음서인 마 3:13-17절을 본문으로, “왜 주님은 세례를 받으신 것일까?” 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여리고 근처 요단강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었는데, 약대 털옷을 입은 요한의 설교를 듣거나 그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서 였습니다. 요한은 회개의 설교와 함께 그 증표로 세례를 거행하였던 것입니다.

 

요한은 세례를 받으시겠다는 주님의 요청을 거절하였습니다(13-14).

교회력에서는 예수님의 명명일(命名日)11일로 지킵니다. 할례를 받으신 날로도 기억합니다. 유대인으로써 할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바로 그 할례를 행하면서 이름을 부르는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할례를 받으신 것이나 세례를 받으시려 한 것은 많이 어색한 일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상징으로 행하는 의식인 때문이고, 세례요한의 세례는 죄를 씻는 회개의 의식인 때문인데, 모두 다 예수님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며, 가당치도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며, 흠도 티도 없는 완전하고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지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왜 예수님은 할례를 받으셨고, 세례를 받으시려 한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이런 질문은 신앙을 성숙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죄인이 되셨음을 세상에 알리시고자 하셨습니다(15).

제가 가장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인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인식입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의 가르침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고, 죄인들과 어울린 삶을 사셨고, 마침내 죄인의 몸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실 때나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죄인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오실 때 죄인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세상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실 수 있는 죄인 중의 괴수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 코스프레를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죄를 떠맡으시기 위해서 스스로 죄인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저와 여러분의 죄의 값을 상징하는 구원의 십자가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순종하는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 하셨습니다(16-17).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은 성경의 기본 진리입니다. 아브라함이 순종할 때 그것을 의로 여기셨고(15:6), 탐욕에 눈먼 사울을 충고한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하였습니다(삼상 15:22).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은 죄인의 자리로 내려가신 순종의 모범이었기에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시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생전에 교회를 지어서 봉헌하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한 교우가 있었습니다. 헛된 약속이었습니다. 교회를 세우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한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우쭐대고 싶었던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어야 합니다. 매일 매일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에 삶으로 순종하는 것보다 더 값진 신앙생활이란 없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