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저는 믿습니다. / 요 3:16-21.

박성완 2020. 1. 21. 01:53

묵상자료 6823(2020. 1. 21. 화요일).

시편 64:3-4.

찬송 41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회적으로 좋은 평가나 월급 액수를 버리고, 자신이 꿈꿔왔던 일을 찾아 나선다는 건 어쨌든 참 용기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누구나 그런 용기와 최선을 누리기에는 힘이 들지요. 적성에도 맞지 않고 일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나 보람이 크지 않아도, 그 일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게 서글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그런 자화상은 때론 가장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예술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지요. 프란츠 카프카는 부유한 유대가정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했지만, 본인은 법학에 큰 흥미도 관심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권위적인 아버지의 바람을 거역하기가 힘들었고, 그래서 법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카프카는 지방 보험 국에 취직을 하지요. 마음은 온통 소설에 사로 잡혀 있었지만 그에게는 생활인으로써 충실해야 한다는 강요와 자기 억제가 더 컸던 겁니다. 대신 그렇게 낮엔 평범한 생활인으로써 보험 국 일을 하고, 퇴근해 돌아오는 순간부터는, 오로지 자기만의 시간과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러면서 문학사에 영원히 이름을 남기는, 그런 작품들을 써 내려갔습니다. 앞서 얘기한 신입사원의 사직서를 읽다보면, 일이나 직장이란 들어가려고 애를 쓰는 것 못지않게, 제대로 그만두는 것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또 카프카처럼 생활인으로써의 일은 일대로 하면서, 자기만의 꿈을 이루는 것도 가능하다고 위로해 봅니다. 긴 설 연휴는 즐겁게 쉬는 한편으로, 자신의 일과 진로를 진지하게 다시 돌아보는데도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119일 방송>b.

 

2. 오늘 본문은 어제 니고데모와의 대담의 연속성 상에서 읽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비중으로 보아서 독립된 표제어가 필요할 듯하지만, 공동번역 성경이나 개역 개정판에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아서 그대로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중요성으로 봐서 제자들을 위한 강론이거나, 보다 많은 대상을 향한 독립된 말씀으로 분류 되었으면 좋았겠다 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유명 주석가들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의 하나로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장황스런 서두를 꺼낸 것은 이 본문이야말로 성경의 중심이며 핵심 구절인 때문입니다. 이른바 기독교의 구원론이 가장 간결하게 요약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16절과 그 해설인 17-21절은 저와 같은 목사들이 깊이 연구해야 할 과제중의 과제라 하겠습니다. 기독교 구원이란, 첫째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에서 출발했다는 점, 둘째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으며, 셋째 모든 사람을 멸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데 그 유일한 조건은 믿음이라는 점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발견하고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누구의 요구나 탄원 때문에게 아니라, 당신 자신의 의지와 계획에 따라 세상을 사랑하시고 아들을 구세주로 보내셨다는 것이고, 목적은 모든 사람을 죄와 죽음에서 생명으로 구하시는 것인데, 유일무이한 조건은 이런 하나님과 이런 예수님을 믿는 것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조건으로 삼으신 믿음이란,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이런 예수님의 순종의 삶을 말씀하시는 대로, 받아들이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는 것과 믿지 않음의 차이를 우리가 바르게 눈떠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믿음은 하나님의 계획과 행동에 말씀을 받아들임인 인정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우리들이 늘 절벽과 같은 절망에 빠졌던 것은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믿음에 대한 오해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이란 우리들 인간의 상식과 이해의 범주에서 용납될 수 있어야 한다는 오해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은 인간의 이해나 인식의 범주 안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혹은 하셨다고 말씀하실 때 우리들의 반응이 그렇습니다. 그 말씀을 믿습니다 라고 수용하는 일입니다. 이사야의 말처럼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이 언제나 땅보다 높음같이, 우리들의 생각보다 높다는 깨우침에서 시작되는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아멘.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