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중심과 질서있는 예배가 필요할 때. / 요 4:16-26.
묵상자료 6826호(2020. 1. 24. 금요일).
시편 65:1-3.
찬송 5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최근에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이젠 초등학생들조차 새해 결심 1위가 다이어트라고 합니다. 비만은 어른만이 아니라, 초등학생들에게도 문제이긴 하겠지요. 하지만 아이들이라면 한창 몸무게도 늘고 키도 자라야 하는 나이 아닐까요? 벌서 다이어트라니? 체중에 대한 우리 분위가 너무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존 그웬의 <야윈 어깨를 가진 소녀> 그림이 떠오릅니다. 소녀는 보통의 명화 속 소녀들과는 달리, 어깨가 너무 말라서 초췌하다 못해 다소 기형 적으로 보입니다. 얼굴은 더 심하지요. 눈 밑이 검게 그늘져 소녀의 얼굴 같질 않습니다. 물론 다들 이렇게까지 마른 걸 바라지는 아니겠지요. 하지만 소녀의 모습이 바로 다이어트 열풍이 갖는 욕망, 그 자체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소녀를 그린 존 그웬의 외면은 이렇지 않았지만, 내면은 이렇게 바싹 야위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존 그웬은 1876년 영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한 여성화가로, 제임스 휘슬러에게서 지도를 받기도 했는데, 남동생 존 오거스틴도 화가였는데, 당대에는 동생의 그늘에 가려질 정도로 동생이 유명했지만, 후대로 갈수록 그녀의 그림에 대한 평가가 훨씬 높아졌습니다. 거기에는 물론 로댕의 영향도 없지 않았습니다. 로댕의 연인이라면, 흔히 까뮤 끌로델을 떠올리지요. 그런데 존 그웬도 스물일곱 살 때 예순 세 살의 로댕과 사랑에 빠진 로댕의 연인이었습니다. 그녀 역시 끌로델처럼 로댕의 조수이자 모델이었고, 화가였지요. 그러나 그녀의 사랑은 클로델과는 달랐습니다. 혼자 조용히 감수하고 홀로 고독하게 물러나는 유형이었달 까요? 로댕을 절절히 사랑하면서도, 그래서 로댕에게 자그마치 2천 여 통의 편지를 썼으면서도, 한 통도 붙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로댕에게 부담을 주거나 그를 짜증스럽게 할까 겁을 냈거나 배려에서 엿을 것입니다. 로댕과 헤어진 뒤에도 이미 파괴적인 삶을 살았던 끌로델과는 달리, 조용히 은둔하듯 일상을 보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끌로델만큼 유명해지진 않았지만, 그래서 화가로써 독자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1월 25일 방송>a.
2. 어제 말씀의 연장선에서 읽었습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서로의 관심사가 노출되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십니다. 왜 남편을 찾으셨는지는 좀 낯선 대목이지만, 그녀의 채워지지 않는 문제점을 끌어내고 싶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없다고 말했는데, 그런데 주님은 그녀가 이미 다섯이나 남편을 가라치웠고, 지금 남편 역시 자신의 남편이 아니어서 남편이 없노라 말했다고 해명까지 하십니다. 그러자 여인은 주님을 예언자로 고백했고,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배의 자리를 달리하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런 여인의 생각은 당시 예배의 진위를 놓고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 사이의 엇갈린 주장을 여과 없이 잘 투영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때 주님은 예배의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예배의 의미, 예배의 정신에 주목하게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십여 년 전에 중국 상해의 한 지역교회가 저를 한 주간 초청해서 <바른 예배>라는 주제로 특강을 부탁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오늘 본문 말씀 중 24절을 가지고 함께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신령과 진정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원문으로 쓰인 이 두 낱말은 εν πνευματι και αληθεια 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를 설명하면, “성령의 도우심과 진리에 따라서” 예배드리라는 말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깨우쳐 주시고 도우시는 분이며, 진리에 따름이란 질서 있고 합당하게 예배를 드리라는 뜻인 것입니다. 물론 해석하는 것이 어렵습니다만, 성령의 도우심이란 하나님 중심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알게 해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할 때, 예배자의 감정이나 자의적 이해를 따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 맡기고, 성경이 가르치는 질서를 따르려고 할 때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예배, 질서와 합당한 순서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3. 즐거운 설 명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