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 중에 더 확실한 주님의 은총. / 요 6:16-26.
묵상자료 6834호 (2020. 2. 1. 토요일).
시편 66:13-15.
찬송 48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속에 스며는 따뜻한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짝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 마주쳤는데, 다시없을 기회로 느껴진다면, 목적지까지 올라가는 동안 자기 마음을 표현해야 하겠지요. 그 짧은 시간동안 어떤 말을 해야 좋을까요? 또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가 관심 있는 회사의 중요 인물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가 가야할 층에 도착하기 전에 자신을 소개하고, 왜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지를 설명해야 한다면, 어떤 표현이 좋을까요? 이렇게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일컬어서, 엘리베이터 스피치라고 하는데요. 어떤 상품이나 기업의 가치에 대해 빠르고 간단한 요약 설명이 필요할 때 쓰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는 로켓 피치라고도 하지요. 내용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전달력입니다. 좋은 재료를 어떻게 조합해서 아주 간단하고도 맛있는 요리를 만드느냐 하는 조리법과도 같은 거지요.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나 목소리 톤, 속도 자신감이나 열정, 이런 섬세한 부분들에서 전달력의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길면 안 된다는 겁니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장황한 논리보다는, 하고자 하는 말을 얼마나 응집력 있게 압축해서 상대의 가슴에 깊이 가 닿도록 하느냐 겠지요. 그래서 어른들은 그걸 1절만 해라. 라고 표현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30초에서 1분. 2, 3절은 빼고 1절 만하기. 엘리베이터 피치. 어쩌면 오늘 하루가 일생 중에 가장 농도 짙게 표현해야 할 바로 그 순간일지도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7년 2월 1일 방송>
2. “물위를 걸으시다(16-21절)”과 “생명의 빵(22-26절)”을 읽었습니다. 둘째 단락은 다음 월요일에 같은 내용을 읽어야 하기에 오늘은 첫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사람이 물위를 걷는다는 것은 마술이라면 몰라도 자연법칙을 거스리는 일입니다. 체중이 물의 부력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런 현상을 신비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정상적이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정상적이지 않은 일에는 너무 마음을 쓰지 말자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일부 어떤 사람들은 이런 비정상적인 일에 도전해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령 제가 만난 어느 재미교포 화학박사라는 분입니다. 그 분은 성경의 기적들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방주도 찾아내야 하고, 생명의 신비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억지로 인간의 이해에 끌어들이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는 신비한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삶의 신비를 다 캐내야만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수천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될 일들인 때문이며, 그 전에 삶을 마감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불공정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신비를 받아들이는 때문입니다. 태풍이 불고 쓰나미가 일어나는 것은 많은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바닷 속을 청소하고 새로운 생명의 흐름을 가져온다고 합니다. 죽음도 그렇습니다. 재능있는 친구가 몹쓸 병으로 고생한다며 제게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이는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다며, 죽음을 준비하자는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늙은 세대는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젊은 세대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사들이 모두 하나님의 신비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비를 겸손히 수용하는 자세, 이것이 인생을 평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높은 뜻을 알 수 없다고 항변하기 전에, 우리들 생각보다 더 높고 깊은 하나님의 뜻에 먼저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절망의 순간에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은 오히려 순경보다 역경에 더욱 뜨겁게 느껴지는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