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성찬 예배가 필요한 이유. / 요 6:52-59.

박성완 2020. 2. 5. 04:20

묵상자료 6838(2020. 2. 5. 수요일).

시편 67:3-4.

찬송 28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여전히 소리 낼 수 있는 종은 소리 내도록 하라. 완벽한 것은 없다. 어디에든 틈이 있기 마련, 빛은 그곳으로 들어온다.” 종소리와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잠시 음악을 꺼두어도 좋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듣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들을 수 없기도 하지만, 실제로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들이기도 하지요. 햇살처럼 찬란하게 부서져 내리며, 파도처럼 굽이치며 멀리 퍼져나가는 종소리를 귀에 담고 있으면, 때론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종을 운다 라고 하지요. 우리는 종이 울린다고 하지요. 당연한 말이지만, 종의 기능이라는 게 우는 데 있고, 종을 울리려면 때려야 합니다. 그걸 견디지 못하고, 만약에 어느 한 곳이 깨져버린다면, 종으로써는 끝장입니다. 더 이상 울 수 없기 때문이지요. 가끔 스스로가 그런 종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깨져서, 깨져 버려서,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습니다. 깨진 종이 내는 소리를 누가 들으려고 할까요? 그러다가 캐나다의 음유시인 레너드 코엔은 <앤섬>이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를 붙였습니다. “완벽한 것은 없다. 어디에든 틈이 있게 마련, 빛은 그곳으로 들어온다.” 하나의 사람이 하나의 종이 되어 내는 소리는, 자신의 실수로 타인의 배신으로 운명의 농락으로 깨진 흔적, 그 깨진 조각들을 눈물과 땀으로 이어붙인 흔적. 아무리 애써 붙여도 결코 처음 같을 수 없어서 생기고 만, 흔적과 흔적 사이, 틈에서 울립니다. 약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깨지지 않았다면, 결코 낼 수 없는 소리. 이것이야 말로 진짜 나의 소리.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겁먹지 말고, 여전히 소리 낼 수 있는 종은, 소리 내도록 하라<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4117일 방송>

 

2. “생명의 빵(52-59)” 세 번째 말씀을 읽었습니다. 오늘 역시 유대인과 예수님 사이에 나눈 토론인데, 어떻게 자신의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느냐는 주제입니다. 어쩌면 이 질문은 예수님의 말씀이후 지금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자주 언급하는 실례입니다만, 순교자 저스틴이 기록했다는 <변증서 1>에는 이 말씀이 기독교를 박해하는 빌미가 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가령 받아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해서 주는 내 몸이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오해할 소지를 주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변증서에서는 2세기 기독교회의 예배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설교를 중심으로 하는 제1부 말씀의 예배가 끝난 후에는, 세례 받은 사람들만이 참가하는 성찬 예배를 드리는데, 교회당 문을 걸어잠그고 드렸는데,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들으니까,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라. 받아 마시라. 이것은 내 피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을 잡아서 살을 뜯어먹고 피를 마시는 것으로 간주하고 핍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몸과 피를 주심으로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것이었다고 해명하였습니다.

   우리는 성찬의 의미를 다시금 분명히 언급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은 보속의 제물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고백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제단에 바쳐진 송아지나 양 같은 제물들은 죄인의 죄를 전가(轉嫁)받은 후 죽임을 당하게 되듯,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인간의 죄를 뒤집어쓰고 죽은 것을 의미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를 의식화하는 방법으로 성찬식을 통해서 확인하고 고백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런 성찬 의식과 같은 신앙교육이 뒤따르지 않는다고 하면,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바르게 이해할 길이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만일 생명의 빵을 제대로 깨닫고 감격적인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이런 성찬의식이 자주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교회는 예배 행위를 떡을 떼며 기도하는 일로정의하였습니다(2:42, 20:7). 차제에 현대 교회에서도 적어도 주일 예배에서는 성찬 의식이 필수 요건으로 강조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