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흠과 티를 만드신 사례(事例). / 요 7:10-36.
묵상자료 6841호 (2020. 2. 8. 토요일).
시편 68:4-6.
찬송 49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내가 보아온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르바와 마티스가 만났다면 어떤 대화를 나눴을지 상상해 봅니다. 조르바가 말합니다. “이보오, 화가양반, 음식을 먹고 그 음식으로 무엇을 하는지 대답해 보시오. 화가 양반 안에서 그 음식이 무엇으로 변하는지 설명해 보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려드리리 이다.” 마티스가 응대합니다. “이봐요, 그리스인, 친구가 모든 재산을 잃어서 절망에 빠졌을 때도, 옆에서 양고기를 굽고 포도주를 마시고 그리스 민속춤을 췄다면서요? 멋있어요. 그게 당신이지요.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그 모습을 꼭 그려보고 싶군요. 나는 내가 보아온 모든 것으로 이루어졌으니까요.” 물론 어디까지나 상상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조르바와 마티스가 만나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면, 두 사람은 꽤나 뱃장이 맞아서 양고기도 굽고 포도주도 마시고 함께 춤을 추었을 것 같습니다. 마티스는 야수파를 주도했습니다. 원어로도 우리말로도 괴상하기 짝이 없는 이 야수파라는 용어에는 경멸이 담겨 있습니다. 마티스의 그림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야수처럼 추하다는 뜻이지요. 이제 막 데뷔한 마티스는 평론가들에게 그런 말을 듣고 무척이나 속상했을 겁니다. 과연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추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것만 보고 아름다운 것만 그린다면, 그럴듯한 실내장식품은 될지 몰라도 예술은 될 수 없으며,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가짜이야기입니다. 미술사학자 최순우에게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요?” 그는 이런 답을 들려주었다고 하지요. “온 천지에 충만한 아름다움과 추한 것들이 학생 눈에 보이게 되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을 먹고 무엇을 하느냐하면, 온 천지에 충만한 아름다움과 추한 것들을 여러 번 거듭해서 보고 느낍니다. 그렇게 보아온 모든 것이 나를 만듭니다. 보면서도 대충보고, 느끼지 않은 것들은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빠져나가, 봐도 보지 않은 것, 있어도 없던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만큼 나를 만들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그러니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보는 방법에 대해서 조언을 듣자면, 1953년 마티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했던 말에 귀 기우려봅니다. “아이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4년 2월 3일 방송>
2. “초막절 명절에 올라가신 예수(10-24절)”, “이분이 그리스도인가?(25-31절)”, “보내신 분에게 돌아가리라(32-36절)”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첫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이 구절은 매우 흥미로운 구절입니다. 바로 앞 단락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형제들에게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명절을 지키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는데, 형제들이 올라가고 난 뒤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은 흠도 티도 없이 완전히 율법을 지키신 분으로 알고 있는 마당에 이 구절을 읽으면서 상당히 충격을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초막절 역시 7일동안 지키는 절기인 때문에 혼자서 명절 동안 지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왜 주님은 당신이 말씀하신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두 아들> 비유(마 21:28-32)처럼, 어떤 반전을 기대하는 말씀을 하시려는가? 등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의 언행은 시쳇말로 앞 뒤가 맞지 않는 말씀을 하신 게 분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에겐 흠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왜 흠이 생기는 말씀을 하셨을까 입니다. 그에 대한 변명이 있습니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오라 가셨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만한 개연성을 찾을 수 있는데, 요사이 자주 쓰는 말 여론을 알고 싶어서 인지 모르겠습니다(11-13절). 그리고 보다 진솔하게 율법과 복음을 가르치고 싶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토론 주제는 율법과 할례의 충돌 현상을 예리하게 지적하신 것입니다. 할례는 모세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율법입니다. 생후 8일째 되는 유대 사내 아이에게 포경을 하는 의식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율법에 따라 안식일에는 절대로 할 수 없는 할례를 행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생후 8일째는 바꿀 수 있는 날짜가 아닙니다. 만일 그 날이 안식일이라면 그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해야 하기에 지키고 있는데, 안식일의 율법에 의하면 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이 흠과 티를 만드신 까닭을 발견했습니다. 하얀 거짓말은 괜찮다고 말입니다. 이른바 선의(善意)의 거짓말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