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9. 주현절후 넷째주일] 바리새인 보다 더 바르게 살 이유. / 마 5:17-20.
묵상자료 6842호.
시편 68:7-8.
찬송 23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서양 미술사상에 가장 잘 생긴 화가로 유명했던 아메제로 모딜리아니, 그는 연인이었던 잔느에게 어느 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된다면, 당신의 눈동자를 그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야기대로 연인 잔느의 눈동자가 살아 있는 아름다운 초상을 남겼습니다. 누군가의 속마음이나 진실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의 눈동자를 자세히 보라는 말이 있지요. 가끔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시간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내 안에 감춰진 또 다른 모습,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KBS FM 1, 새아침의 클래식, 2008년 2월 9일 방송>
2. 주현절후 넷째주일의 복음서 말씀 마 5:17-20을 본문으로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나은 생활”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가장 자랑스러운 신앙인으로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신앙생활은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겉과 속이 다른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 결국 향기 나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첫 걸음은 율법적인 삶에 있습니다(17-18절).
성경에서 혹은 설교에서 자주 듣는 말씀이 율법입니다. 율법은 사람에게 부과된 과제들을 명문화해 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일들, 그리고 인간들 앞에서 해야 할 일들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규범들과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정해놓은 규범들이 그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일,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 안식일을 준수하는 일을 비롯해서, 부모를 잘 공경하고 거짓말하지 않고, 도둑질과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는 등을 금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들이 이런 율법적인 계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은 최소한 윤리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인정받곤 합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이런 율법을 제대로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누구도 율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19절).
모든 사람은 율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할수록 율법에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위선자가 되기 더 쉽습니다. 율법을 가르쳐야 하고 강조해야 하는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치고 강조하지만, 정작 불효자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지도자일수록 부모공경이나 형제 사랑을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랑과 평화를 입버릇처럼 외치는 사람들이 오히려 미움과 증오를 부추기며 살아갑니다. 대화의 철학자 마틴 부버가 팔레스타인을 접수한 유대인의 일원으로 상륙했을 때, 잘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도자의 집을 빼앗아버렸습니다.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말입니다. 율법은 인간을 죄의 한 복판으로 안내할 뿐입니다.
율법학자와 사두개인보다 더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20절).
지킬 수 없는 법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몇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죄를 깨닫게 해 줍니다. 둘째는 생명을 보호하는데 일조합니다. 셋째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합니다. 율법의 역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1세기에는 주인의 아들을 선생에게 데려다 주는 몽학선생이라는 직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진짜 선생께 안내하는 역할만 합니다. 율법이 바로 우리들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안내해 주는 몽학선생입니다(갈 3:24). 이유는 간단합니다. 율법에 충실하면 할수록 더욱 절망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학자와 서기관보다 더 바르게 살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까닭은 율법의 가공할 정죄에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를 향해서 눈을 돌리게 가르친 이는 사도 바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