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16. 주현절후 여섯째주일] 분파주의를 극복할 이유. / 고전 3:1-9.
묵상자료 6849호.
시편 68:24-25.
찬송 24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슴은 뛰놀고 있을 때, 풀을 먹고 있을 때, 짐승이나 사냥꾼에서 쫓기고 있을 때, 시간이 엄청나게 다릅니다. 쫓길 때 사슴의 시간, 그 시간은 영원입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처럼 시간을 고무줄 같습니다. 영원했으면 싶은 시간은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사람처럼 순식간에 지나가고, 추운 겨울 날 운동장에서 서서 들어야 하는 연설처럼 얼른 지나갔으면 싶은 시간들은, 영원처럼 길기만 하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2월 15일 방송>
2. 오늘은 주현절 여섯째 주일로, 사도서간의 말씀 고전 3:1-9을 본문으로 “분파주의를 극복할 이유”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분파주의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보편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혈연, 지연, 학연, 종교 등으로 사분오열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다양성의 순기능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협력해야 할 공동체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파주의를 부정적으로 암시하고 있습니다(3-4절).
고린도 교회의 분파주의는 서로 시기하고 다툼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제가 목회할 때 주변에서 가장 큰 교회가 둘로 갈라지게 되었는데, 설교단의 목사를 목자 지팡이로 끌어내린 일까지 하였습니다. 아마 일정 부분을 보상형식으로 갈라서게 되었는데, 직선거리로 300미터 거리에 교회당을 개척하였는데, 교회명도 새신(新)자를 붙였습니다. 이를 두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는 방법이라고 극찬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갈라지는 과정에서 너무도 많은 상처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시기와 다툼이 교회를 둘로 셋으로 나누게 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파하셨을 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성장통으로 미화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건강한 분파주의는 다양성을 강조할 때 뿐입니다(5-8절).
역사적으로 교회는 수백 가지 이름으로 등장했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동서 로마교회로 분파되었고, 로마 교회와 영국교회로 갈라졌습니다. 서방 가톨릭 역시 수 백 수천 개의 다양한 그룹들이 생겨났습니다. 대부분이 수도회라는 이름으로 저마다의 특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분파주의의 순기능적 일면이라고 하겠습니다. 개신교회 역시 신학적 시대적 특징에 따라서 분파가 이루어졌습니다. 루터파와 칼빈파는 성찬에서 합의를 보지 못했고, 감리교파는 신학적인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으며, 침례파는 성경의 자의적 해석을 반대했습니다. 나름 분파의 순기능적 면입니다. 그러나 역사나 신학이 동일한데도 불구하고 120여개의 총회로 갈라진 한국의 장로교회는, 인간중심적 역기능을 유감없이 들어낸 경우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다양성 속의 일치를 표방해야 합니다(9절).
성경과 교리와 전통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라고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 중심적이라는 신앙은 지켜져야 합니다. 교리나 전통은 성경을 도울 수 있지만, 그 반대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12일 로마 교황청은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 서 사제독신제를 고수키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성례전을 베풀 권한이 사제에게만 있다는 보수적 주장과, 오지에 사는 사람들도 세례와 성찬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진보적 주장이 부딪히는 가운데, 보수의 손을 들었다 합니다. 16세기 사제의 결혼제를 채택했던 영국 교회가 열심히 중재하였다고 합니다. 신앙의 강조점 역시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하며, 그 중심은 성경 전체의 맥락을 지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수백 가지 지체가 한 몸을 위해 일하듯, 서로 다른 교회들이 한 하나님, 한 성자님 그리고 한 성령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순수한 목적으로 일사분란하게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3. 컴퓨터가 고장나서 서울로 귀환 수리, 묵상자료가 늦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