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살의(殺意)까지 품은 유대 종교지도자들. / 요 12:9-19.

박성완 2020. 2. 28. 00:11

묵상자료 6861(2020. 2. 28 금요일).

시편 69:19-20.

찬송 15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때가 되면 해마다 피는 산 벚꽃. 벚꽃나무 쪼개봐라. 벚꽃이 있는가?” 일본의 15세기 때, 선승 이큐의 행적은 지금으로써도 파격적입니다. 여든 살에 칙령으로 대덕사의 주지를 맡기 전까지, 평생을 길에서 살면서 술과 여자는 사랑했지만, 허례허식과 위선은 죽도록 싫어했습니다. 국민적인 명성을 얻은 다음에도, 늘 누더기를 걸치고 허리에 큰 목검을 차고 피리를 불며 걸어 다녔는, 그 모습이 얼마나 기이하게 보였을까요? 특히 차고 다니던 목검이 진검이나 다름없이 생겼었는데, 스님이 칼을 차고 다니다니.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기에는 뜻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목검처럼 당신들을 속이는 가짜 스님들, 가짜 말들이 많으니 경계하라는 표식이었지요. 입고 있는 누더기 옷 때문에 벌어진 일화도 많았습니다. 부잣집에 초대를 받고 갔다가, 주인한테 거지 취급을 받고 쫓겨났습니다. 이큐 선사는 잠시 후에 금실로 지은 법의를 입고 다시 찾아갑니다. 그러자 방금 전에 그를 거치 취급했던 주인이 반갑고 깍듯이 맞았지요. 이큐 스님이 말합니다. “저보다는 이 옷이 더 필요한 것 같으니 오늘 법회는 이 옷이 주관하도록 해 주십시오.” 통쾌하고 재미있는 일화이지만, 우리라고 그 부자와 크게 다를 수 있을까요? 진짜같이 생긴 가짜에 속지 않을 수 있을지, 옷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모습에 속지 않고, 사람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 하긴 눈에 보이지 않아 알 수 없는 게 어디 그뿐일까요? 하루는 이큐 선사가 길을 가다가 다른 떠돌이 중을 만났습니다. 떠돌이 중이 다짜고짜 불법이 어디 있느냐며 시비를 걸었습니다. 이큐 선사가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내 가슴속에 있다.” 그 말에 떠돌이 중이 정말 있는지 가슴을 열어봐야겠다며 칼을 들이댔습니다. 아마도 그 때 계절은 바야흐로 봄이었고, 벚꽃이 만발하던 모양입니다. 이큐 선사가 말했습니다. “때가 되면 해 마다 피는 산 벚꽃. 벚꽃나무 쪼개봐라. 벚꽃이 있는가?” 나무를 쪼갠다고 그 안에 꽃이 있을까요? 꽃이 피는 이치가 나무 안에 있지 않은 것처럼, 내가 이렇게 된 게 그가 그렇게 된 게, 일이 이렇게 되고 관계가 저렇게 되고 만 게, 무엇 하나에만 달려 있지도 않고, 그래서 나만 그만 들여다본다고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소동파가 노래했지요. “거문고에 거문고 소리 있다고 한다면, 갑 속에 두었을 땐 어째서 울리지 않는가? 소리가 손가락 끝에 있다고 한다면, 어째서 그대 손가락 끝에서는 들리지 않는가?” 그처럼 그저 어떤 조화와 조합의 결과로, 때가 돼서 일어난 것일 뿐인 지도 모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4414일 방송>

 

2. “나사로를 죽이려는 음모(9-11)”예루살렘 입성(12-19)”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첫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를 방문하셨다는 소식은 당시로써는 대단한 빅 뉴스였을 것입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려내셨다는 이야기는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엄청난 뉴스였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베다니로 몰려든 것입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3km정도 되는 거리였으니 충분히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술렁댐을 보고 예루살렘 대제사장들은 걱정이 생겨났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린 예수라는 젊은이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하였으니, 경쟁자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 그들은 위협을 느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수천 년 동안 견고한 유대교 신앙과 전통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기감이 예수는 물론 나사로마저 죽이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그들 마음에는 시기와 질투가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시기와 질투를 이겨내려면 내공을 쌓지 않으면 힘들 것입니다.

   예나 제나 사람들은 인기에 좌우되곤 합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인기를 차지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제가 어려운 시련을 겪고 있을 때입니다. 한 점잖은 지인 장로님 한 분이 저를 힘들게 하고 있었는데, 그 분이 했던 한 마디 말이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목사님은 동료나 후배 제자들에게서조차 인기가 없으시더군요.” 맞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평생 인기와는 무관한 그런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름 진실을 사랑하고 정의를 택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끔찍이도 내세우는 진리와 정의가 몇 푼어치나 되겠습니까만, 그래도 신념을 갖고 살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평생은 이런 시기와 질투 속에 살으셨던 주님을 생각하는 하루입니다.

 

3.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오늘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짊어집시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