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모든 말씀은 특정한 배경들을 가진 것임을 생각할 것. / 고전 7:32-40.

박성완 2020. 3. 17. 00:39

묵상자료 6879(2020. 3. 17. 화요일).

시편 72:1-3.

찬송 30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긴 그곳은 화려한 귀족 계급의 신사숙녀들이 오가는 상젤리제 거리이지요. 그리고 그림 속 남자들치고 모자 안 쓴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당시로써는 수입이 좋은 직업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모자를 담은 큰 통에 드레스에 우산에 여러모로 성가시고 불편한 상황인데도, 아름답게 웃고 있는 그녀의 표정에서 그런 짐작이 더욱 강해집니다. 하지만 수입이 어떻든 또 상인이든 그냥 직장인이든, 비오는 날이면 하던 일 빨리 마무리하고, 얼른 집에 가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차가운 비 때문에 몸살기며 감기 기운까지 느껴지면, 더욱 그렇습니다. 빨리 집에 가서 따뜻한 방에서 편안히 쉬고 싶어집니다. 장 베로의 또 다른 그림 <집까지 가 주세요>의 여성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막 마차 한 대를 세웠습니다. 비는 안 오지만, 그녀 역시 마음이 다급한 듯합니다. 마부가 그냥 가버릴 봐, 우리식으로 하면 승차거부를 하고 가버릴까 봐 불안한 듯, 한 발을 벌써 마차에 올려놨습니다. 어쩌면 뒤쪽에 아이를 안고선 노파와 같은 일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 시절 거기 마차들도 일행이 많고 성가신 하면 잘 안 태워주니, 그녀가 혼자 인 듯 잡았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그런 날이 있습니다. 비 때문이든 비는커녕 햇빛만 좋은 날이건, 감기 기운 때문이건, 아이와 함께 했던 외출이 편치 않아서든, 택시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무조건 빨리 따뜻한 집이나 방으로 귀가하고픈 날. 그런 날이 있어서 어떤 날의 동네 불빛들은, 더욱 아늑해 보이는 거겠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316일 방송>b.

 

2. 어제의 주제 종말을 목전에 둔 미혼 남녀들(32-40)”을 읽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기독교 신앙에 심취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고 기독교 밖에 있는 사람이라면 오해를 넘어서 곡해까지 할 매우 위험한 말씀입니다. 성경이든 무슨 글이나 말이든 그 말의 배경을 이해하지 않고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나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사람은 이 말 “Text in Context”를 항상 곱씹어봐야 합니다. 모든 말에는 그럴만한 상황이나 배경이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종종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본문 자체만으로 화를 내기도 하고 얼굴을 돌리기도 하는 때문입니다. 사도는 결혼을 했던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결혼 생활의 분위기를 너무도 꿰뚫어보고 있는 때문입니다. 갓 결혼한 부부가 서로에게 얼마나 충실하다 못해서 최선을 다하는 가를 말하고 있습니다(32-34). 배우자와 주님을 비교하면서 배우자를 주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겠거든 결혼을 하라고 하면서도, 마음만 단단히 먹으면 결혼하지 않는 편이 더 좋겠다고도 말합니다(36-38). 그리고 가능하면이 아니라 반드시 교우하고만 결혼하라는 권면도 주저하지 않습니다(39). 그런데 과부가 되었다고 하면 재혼하지 말고 과부로 지내는 것이 좋겠다(40)고 강조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주장들은 사도가 살고 있었던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첫째는 아랍 문화권이라는 배경입니다. 철저하게 남존여비의 시대환경입니다. 주님 중심의 삶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어떻게 과부만 해당이 되고 홀아비는 해당이 되지 않는지 불공정한 처사입니다. 둘째는 임박한 종말관이라는 시대 배경입니다. 곧 주님께서 재림주로 오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연히 우선권을 어디에 두는 것이 신앙인다운 처세일까요? 주님을 맞이할 준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주적인 파국은 지난 2천년 동안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세상은 문명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삶의 질도 더 나아지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고대가(苦待歌)를 부르는 교회를 찾을 수가 없고, 회개를 강조하는 설교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점점 더 기도할 주제가 엷어져 가고 교회 또한 연약해 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현대 교회는 세상에서 더욱 더 출세와 성공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심리적 안정 기재들을 제공하는데 열중하고 있을 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