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그리스도 예수를 모신 질그릇. / 고후 4:1-12.

박성완 2020. 4. 3. 00:01

묵상자료 6896(2020. 4. 3. 금요일).

시편 74:6-8.

찬송 3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릴 때 미장원을 하던 엄마는, 딸의 머리를 항상 아주 짧은 커트 머리로 잘라주었습니다. 절대 조금도 기르질 못하게 했지요. 짧은 머리가 딸의 얼굴에 가장 잘 어울리고 또 그게 제일 깔끔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딸은 사내아이 같은 짧은 머리가 참 싫었습니다. 무엇보다 머리를 자르고 거울을 보면 얼굴이 항상 두 배는 더 커진 것 같았지요. 그래서 어린 마음에 머리만 자르고 나면 심통이 가득한 얼굴로 울곤 했습니다. 미장원에 왔던 아줌마 손님들이 훨씬 좋다는 데도 어린 마음에는 그것까지도 놀림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심통 석인 울음소리가 두 배는 더 높아지기도 했지요. 그러니 스무 살이 넘어서 이제 어른이 됐다 싶을 때, 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머리 마음껏 기르기였습니다. 그러면서 차츰 엄마 미장원 대신 시내에 있는 다른 미용실도 다니기 시작했지요. 엄마는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면서 섭섭해 하시다가, 나중에는 그러려니 생각하시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가끔 엄마의 미장원에서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머리를 한 젊은 여성이 거울을 보면서 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엄마에게 한바탕 불만을 쏟아놓는 겁니다. 그럴 때면 마음이 너무나 짠해집니다. 어린 시절에 엄마가 해 주는 머리는 싫다고 울었던 것 까지 새삼 미안해질 정도 입니다. 그런데다 이제는 취직을 하고 바빠지니, 머리를 하러 시내에 나가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늦은 저녁 문 닫은 미장원으로 엄마를 다시 부르거나, 동네 아줌마들만 모여 있는 엄마의 미장원으로 가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런 날이면 엄마의 가위소리는 전에 없이 경쾌하고 즐겁게 들립니다. 무엇보다 그런 날, 엄마는 더 이상 너는 긴 머리가 절대 안 어울리니 자르라는 소리는 하지도 않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44일 방송>a.

 

2. “질그릇에 담긴 보물(1-12)”을 읽었습니다. 고린도 후서는 사도의 자서전으로 불리는데, 6개의 단편들을 묶은 것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본문은 사도가 자신의 적대자들에게 쓴 변호의 편지(2:14-6:13, 7:2-4) 라는 것입니다. 문득 이런 소개를 받노라면, 예나 지금이나 교회 안팎으로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사도가 변호하려는 주제는 사도가 전하는 복음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이었습니다. 5절에서 언급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선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고, 우리는 예수를 위해서 일하는 여러분의 종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도의 비판자들은 사도가 자기 자신을 알리고 싶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인물들은 교회 안에서도 흔해빠진 일이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대부분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열심히 봉사도 하고, 남들이 힘들어 하는 험한 일들도 옷소매를 걷어 올리고 헌신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칭찬을 듣게 되고 부추김을 받게 되자 교만해 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통과해야 했던 유혹에 걸려 넘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설교의 중심이 자기 자신으로 바뀐 것입니다.

사도는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았음을 이렇게 변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이 보화를 담아 주셨습니다.”고 말입니다. 질그릇은 바로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하나님의 일꾼들을 의미합니다. 보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질그릇으로 빚어진 자신은 아무리 재주를 부리고 술책을 써 봐도 질그릇에서 한 발자국도 달라질 수 없다고 말입니다. 평생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머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질그릇 같은 우리도 보배중의 보배인 예수그리스도를 모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질그릇으로 지어진 이상, 우리는 질그릇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게 지혜로운 처사입니다. 이 사실을 망각한 사람들이 바로 아담과 하와였습니다. 오해나 혼동이 있을까 걱정이 돼서 요즘 시중에 회자되는 금수저 흙수저 얘기를 해야 하겠습니다. 질그릇은 존재 자체를 의미하고, 수저이론은 그 존재가 몸에 걸치는 액세서리를 의미합니다. 비단을 걸치든 광목을 걸치든, 금수저를 손에 쥐든 흙수저를 쥐든, 질그릇이란 존재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도는 자신의 내면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언제나 기쁨과 감사 그리고 희망 속에 살았던 것입니다.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