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인생살이가 힘든 이유. / 고후 1:8-22.

박성완 2020. 4. 7. 01:11

묵상자료 6900(2020. 4. 7. 화요일).

시편 74:19-21.

찬송 42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생각 하나 이어갑니다. 꽃에 앉은 나비는 발끝으로 서 있는 것 같고, 꽃 위를 나는 나비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높이 나는 나비는 세상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고, 허공 속으로 멀리 날아가는 나비는 꽃분이 되어 곧 사라질 것 같습니다. 호사이에 하이코가 떠오릅니다. “몸 무게를 달아보니 65kg/ 먼지의 무게가 이만큼이라니나비는 과연 몇 g이나 나갈까요?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결국은 먼지의 무게일 뿐인 것을. 그리고 또 무엇이 먼지 같을까요? 최승자 시인이 쓴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라는 시가 있습니다. “겨울 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 속을 떠돌 동안은/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채 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기어서라도 가고 싶/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 들어가/ 다시 한 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 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헤진 신발마냥/ 네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기억하지 못하는 것의 무게는 먼지의 무게 같습니다. 설령 기억하더라도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것의 무게 역시, 먼지 무게 같습니다. 그러나 지구의 모든 생명이 우주에서 떠돌던, 바로 그 먼지로부터 시작됐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7418일 방송>

 

2. “환난 후에 받는 위로(8-11)”바울의 계획 변경의 설명(12-22)”을 읽었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새삼 곱씹을 말입니다. 내년 2월이면 우리 내외는 금혼식을 맞는데, 그 정도 함께 살았으면 웬만한 것은 다 알 수 있으련만, 저는 아내를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아마 제 아내도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취미나 음식 그리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 등은 대충 알 수 있을 것입니다만, 무엇을 가장 깊이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일에 정성을 쏟고 있는 지 등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고 그 골이 깊어지면 아예 포기하고, 소 닭 보듯 하는 시간만 보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그런 자신의 삶의 내밀(內密)한 부분을 끌어내고 있습니다만, 그것 역시 이해하기가 힘든 말씀입니다. 사도가 아시아에서 겪었던, 살 희망조차 잃을 만한 시련과 환난이 있었노라 말씀하는 걸,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많이 힘들었겠구나 는 정도로 생각할 뿐이겠지요. 사도는 어려운 고비고비를 하나님께서 넘어가도록 지켜주셨고, 앞으로도 지켜주실 것을 믿는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도의 마음과 믿음을 그저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할 뿐입니다.

   두 번째 단락에서는 사도의 계획이 변경되었던 것에 대해서 해명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하면서 자신의 양심을 앞으로 꺼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그냥 자신이 말한 그대로 알아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합니다. 어쩌면 오해한 부분이 이 지점 같습니다. 자신의 솔직하고 진실한 마음을 오해를 넘어 곡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계획을 바꿀 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사도의 첫 번째 계획은 고전 16:5 이하에 나와 있는 계획을 바꾼 것을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그 결과 고린도 교인들 간에는 바울의 인간성까지 들먹이며 이랬다저랬다 하는 부평초 같은 사람으로 험담을 했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이런저런 오해나 곡해는 있게 마련입니다. 특히 사람관계는 처음부터 속을 다 까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부분과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말입니다. 저도 그런 괴로움을 더러 겪어봤습니다. 누군가를 참으로 돕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신앙생활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결정적인 순간에 철저하게 외면을 당했습니다. 오랜 고민한 끝에 싸늘하게 식어버린 마음을 되살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가령 저를 인생의 멘토로 삼겠노라고 면전에서 호언장담하는던 이가 있었는데, 제가 가장 힘들어 할 때 돌아서는 것을 봤습니다. 한번 식어버린 마음은 돌려놓지 못하는 편이라, 날씨 얘기만 하는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3. 묵상식구 엥글러목사님(위스컨신 주 평화의 왕자교회)의 종려주일 예배 동영상을 보내지 못해 유감입니다. 목사님은 한국에 계실 때 수년간 저와 함께 옥수동교회를 섬긴 적이 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