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있다면, 성령님의 은총입니다. / 고후 1:23-2:11.
묵상자료 6901호(2020. 4. 8. 수요일).
시편 74:22-23.
찬송 41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휴일인데도 새벽같이 일어나 짐을 챙깁니다. 그리곤 여행용 가방을 끌고 서둘러 투표장에 갑니다. 투표소에는 부지런한 분들이 벌써 꽤 나와 계십니다. 투표를 마치자마자 바로 정거장에 나가 공항버스에 오릅니다. 회사에서 여름 휴가대신 4월에 휴가를 앞당겨 쓰는 사람은 자신뿐입니다. 하지만 한 여름의 번잡함도 피할 수 있고, 여행경비며 여러 가지 이로운 점이 많기 때문에, 4월의 휴가 여행은 여름의 그것보다 더 즐겁고 더 설렙니다. 올해 4월 휴가 여행은 투표일을 맞춰서 날짜를 잡았습니다. 2, 3일쯤 일찍 떠나는 좋은 조건의 일정이 있었지만 포기하고 오늘 출발하는 일정을 선택한 거지요. 이정도면 내가 사는 나라나 사회에 대해서, 나름대로 충분히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다 생각하면서 이었습니다. 투표만하고 바로 떠나니, 결과는 여행지에서 듣거나 돌아와서 알게 될 터입니다. 문득 학창시절의 수학여행이 떠오릅니다. 여행기간이라고는 불과 2박 3일이나 3박 4일 정도였지요. 그런데도 잠깐 집을 떠났다 돌아올 때면, 생각하게 됩니다. 그 사이 집이 몰라보게 새 단장 되거나 달라지지 않았을까? 내가 원하던 새 책상을 사다 놨거나, 가구의 위치가 완전히 뒤바뀌지는 않았을까? 집 앞에 이르면 설렘마저 들기도 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돌아올 때도 결과에 따라서 어쩌면 기쁨이나 아쉬운 갖고 돌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소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데도 그럴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의 인문학자인 에라스무스였던가요? “누구도 부모나 국가를 선택할 수 없지만, 개인은 자신을 위해 자신의 재능과 성격의 틀을 형성할 수 있다.” 라고 말했던 사람인데요. 여행 떠나기 전 투표를 마치고 나온 자신의 생각으로는, 오히려 부모라든지 내 성격의 틀은 자신이 선택하기 전에 이미 주어지는 듯 하고, 재능과 국가는 개개인의 노력과 선택에 의해서 스스로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이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잠시 다 잊고 여행을 떠날 시간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4월 11일 방송>a.
2. “바울의 계획 변경의 설명(1:23-2:4)”과 “잘못한 자를 용서하라(5-11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두 번째 단락입니다. 오늘 묵상하는 본문은 이른바 <화해의 편지>에 속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사도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이 있었는데, 사실은 사도만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교우들에게도 고통을 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밝히지 않아서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미루어 짐작하건데 바울의 인격에 대해서 헐뜯거나, 새롭게 들어온 이단들의 주장을 따라서 그의 가르침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보입니다. 엊그제 분당의 어느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방송으로 시청하였는데, 그 교회 교인들에게는 잘 알려진 목사님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 변호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면 으레 따라오는 것은 목회자의 비리를 들추는 비난들이 떠돌곤 합니다. 대체로 교회 재정을 개인재산으로 착복했다는 내용에서부터, 여자 성도와의 불륜에 관한 것들이 주류를 이루곤 합니다. 사실과 다른 경우들이라고 해도 그걸 해명한다는 것은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흔들었던 사람들이 밝혀지고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용서해 주는 게 좋겠다고 사도는 제안을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용서란, 말하듯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때문입니다. 비밀을 모두 덮어주겠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결혼 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의 얘기를 한 것이 평생 후회로 남는 것은, 화가 날 때마다 그 얘기를 단골로 소환하는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용서란 “잊어버리다, 지워버리다.”는 의미인데, 그런 용서를 사람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임을 뒤늦게 깨우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용서해 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용서하려고 노력중이라는 말을 들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니라 성령께서 도우신 은총일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