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히 죄인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 / 시 31:1-10.
묵상자료 6903호(2020. 4. 10. 성금요일).
시편 75:4-7.
찬송 14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생각 하나 이어갑니다. 소년은 빈터 한 가운데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때로는 부드럽게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나무들은 휘파람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좋아하니까요. 그러자 나무들은 조금씩 몸에서 힘을 뺐고 숲 곳곳에서 커다란 하품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참나무들은 낮고 요란하게 하품을 했고, 은 백양나무와 전나무들은 하 높게 숨 쉬며 얌전하게 하품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나무들이 나무들의 말로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새소리와 닮았지만 새소리가 아니라 나무들의 휘파람입니다. 아름드리나무는 땅속을 울리는 듯한 둔중한 휘파람 소리를 잇따라 내고, 가느다란 나무는 피리 같은 소리로 흥얼거리며 휘파람을 붑니다. 나무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나무들은 곳곳에 잎사귀 하나하나에 눈이 있는데, 사람들이 모르는 이유는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나무들이 수줍어서 눈을 감기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나무들이 눈을 떠서 사람을 바라보면, 그 눈길은 참으로 부드럽습니다. 이제 소년은 나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비소식과 맑은 날씨 폭풍우, 숲 반대쪽에서 날아온 새로운 소식에 대해서, 자작나무와 사시나무는 쉴 새 없이 재잘대고, 참나무와 단풍나무는 동굴 속에서 울리는 듯한 기묘한 소리로 이야기하고, 소나무와 주목과 수양버들은 침울하게, 개암나무와 호두나무 밤나무는 모질고 사납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무들과 친구가 된 소년은 나무들에게 초대를 받습니다. 검푸른 하늘에 보름달이 환하게 빛나게 숲을 다시 찾아갔을 때, 어린 나무들은 노래하고 늙은 참나무와 존경받는 단풍나무는 망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느릿느릿하게 흔들흔들 뿌리 끝으로 미끄러지듯, 서로의 가지를 맞부딪히며 휘청휘청, 나무들은 신비로운 리듬에 맞춰서 흥겹게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키가 비슷한 어린 참나무와 짝이 되어, 함께 춤을 췄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8년 4월 5일 방송>
2.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금요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2천년동안 이 날을 여러 가지로 의미 있게 보내려고 힘써 왔습니다. 가상칠언(架上七言/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을 묵상하기도 하고, 어둠의 예배를(Tenebrae Worship) 드리기도 합니다. 저는 교회력에 따른 오늘의 구약 본문인 시 31:1-10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오해하는 부분들이 참 많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은 억울하게 십자가를 지셨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미워하던 유대인들의 시기심과 로마 총독 빌라도가 더 큰 소란을 피하기 위해서 내린 엉터리 재판으로 희생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오해이며 착각입니까? 기독교 신앙을 송두리째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죄인의 괴수가 되어서 십자가형을 받으신 것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죗값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주님이 죄인의 괴수가 된 것은 이래서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에 강생하실 때부터 십자가의 길을 향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인의 제사제도는 죄를 지은 인간을 대신해서 짐승이나 곡물을 제물로 바치도록 합니다. 이것은 완전한 제사가 되지 못해서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 되는 불완전한 제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영원한 멸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기 위해서 완전한 제사를 준비하신 것이 십자가 제사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죄 없는 순전한 양이나 송아지가 아닌 당신 자신을 온 세상을 위한 제물로 바치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죄를 뒤집어썼던 양과 송아지처럼 우리 주님께서 모든 인류의 죄를 홀로 짊어지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인류의 죄를 남김없이 다 끌어안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죄인들의 괴수가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 모든 인생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주 예수께 말로 다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구주가 되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