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신앙은 우리들 신앙의 기초입니다. / 고전 15:12-28.
묵상자료 6907호(2020. 4. 14. 화요일).
시편 76:6-9.
찬송 1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생각 하나 이어갑니다. 2015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모처럼 클래식 음반업계가 활짝 웃었습니다. 쇼팽 콩쿠르 실황 음반이 발매되는 날은 백여 명이 매장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고, 수천 장도 팔리기 어려운 클래식 음반이 수만 장 팔리면서, 가수 아이유의 음반 판매량을 누르고 1위로 올라선 적도 있었는데요.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는 클래식 대중화의 호기를 맞았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조성진은 이런 소신을 밝혔습니다. “클래식이 대중화 되는 건 위험하다. 다만 대중이 클래식화 되어야 한다.” 조성진이 아닌 다른 연주자가 말했다면, 악성 댓글이 달릴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이 그동안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클래식을 비롯한 순수 예술의 대중화에 대해서 말합니다. 예술이 기본적으로 인간을 향하는 것이고 보면, 많은 사람이 많이 접해서 친숙하게 느낄 수 있다면 반가운 이야기이지요.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클래식이 대중음악을 양적으로 압도했던 시절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철학자가 대중소설이나 만화 보다 인기 있던 시절이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사는 게 다 바쁘고 고생스러워서, 고요히 침잠에 생각의 꼬리를 물게 만드는 매체보다는, 감각에 호소해 잠시라도 시름을 잊게 만드는 매체에 더 끌리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클래식을 비롯한 순수 예술은 감상하는데 집중과 시간이 필요하지요. 이런 특성을 갖고 있다 보니, 클래식의 대중화가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쉽게 감상적이게 라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요. 이런 점에서라면 모순이 생기지요. 이미 대중음악이 그 역할을 잘 하고 있는데, 클래식까지 그래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래도 계속 같은 시도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수익과도 큰 관련이 있습니다. 아무리 클래식이라도 수익이 생기지 않는다면, 극장과 연주자는 물론 음악 자체도 명맥을 잇기 힘들게 될 테니까요. “클래식이 대중화되는 건 위험하다. 다만 대중이 클래식화 되어야 한다.” 젊은 연주자의 발언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클래식 음악계에 딜레마를 짚고 있어서,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8년 4월 16일 방송>
2. “우리의 부활(12-28절)”을 읽었습니다. 사도는 우리가 부활신앙에 힘써야 할 몇 가지 이유를 말합니다(12-19절). 첫째는 우리의 믿음이 헛된 것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부활신앙 위에 세워져 있는 때문입니다. 이 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기독교 신앙을 열심히 외치는 이들 중에는 성공주의자들이 많습니다. 이런데 혹한 사람들이 훗날 기독교에서 이탈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둘째는 부활신앙이 아니고서는 인간은 죄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죄 값을 해결한 십자가 사건을 보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주님의 십자가에만 매달리는 분들도 없지 않습니다.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비극밖에 아닌데 말입니다. 마치 지금도 주님의 성만찬을 감사의 식탁이 아니라 희생제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 번째 부활이라고 말씀하시며, 그 다음은 우리들 모든 크리스천들의 부활이 뒤따를 것이라 말씀합니다. 엊그제 미국 뉴스 방송 CNN에서는 시신을 인수하지 않은 수 십구의 시신들을 아무런 표식도 남기지 않고 관들을 붙여서 매장하는 장면이 방영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런 엄중한 시절에 이태리의 한 병원에서는 병원관계자가 앞에서 침대를 끌고 가족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마스크도 하지 않고 뒤를 밀면서 가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토록 사랑하던 가족이 한 마디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집단매장을 당하는가 하면, 그 두렵고 무서운 병원을 쓸쓸하게 나서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죽음만큼 더 매몰차고 황당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부활의 아침이 온다는 신앙은 얼마나 큰 위안과 소망이 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이라는 마지막 원수를 물리치시는 순간이 우리들 앞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하시겠다면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3. 여러분이 부활절 인사를 전해 오셨습니다. 부활절 인사는 주고받는 형식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하면,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