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사람들. / 출 14:21-31.
묵상자료 6913호(2020. 4. 20 월요일).
시편 77:13-15.
찬송 43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만 한 살이 되는 첫 생일을 돌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특별히 명칭을 가진 나이들이 있습니다. 대표적로 20세를 약관(弱冠), 30세를 이립(而立), 40세를 불혹(不惑), 50세를 지천명(知天命), 60세를 이순(耳順), 70세를 종심(從心)이라고 부르지요. 평균 수명이 40세도 안 된 시대에 산 공자의 말이니, 그 보다 두 배 이상 길게 사는 요즘 시대에는, 약관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의 시기를 늦춰도 되지 않겠느냐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고 싶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 언젠가 끝이 있는 사람의 일생입니다. 나이는 자신이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늠해 주는 풍향계 같은 게 돼 줄 수 있겠지요. 또 평균수명이 길어졌다고 해도 청장년 시절이 아니라, 노인의 시절이 늘어난 것이고 보면, 과연 공자 시대와 지금 이 시대의 사람의 일생이 얼마나 크게 다를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논어에 나오는 나이의 별칭을 살펴봤습니다. 20세를 약관이라고 부르는 건, 스무 살에 관을 쓰는 성년식을 하는데서 나왔습니다. 이제 어른이다 는 뜻이지요. 약관은 남자 20세를 가리키고, 여자 20세는 방년이라고 불렀습니다. 꽃다운 나이라는 뜻입니다. 30세인 이립은 기초를 확립하고 자립하는 나이. 40세인 불혹은 사물의 이치를 터득해서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입니다. 50세는 지천명,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아는 나이라는 뜻인데, 쉽게 말해서 되면 되는 일로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자신의 운명을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60세인 이순은 만물에 통달해서 어떤 말을 들어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인데, 참고로 군자는 이순이 되니 누가 어떤 말을 해도 웃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70세를 종심이라고 합니다. 마음 가는 데로 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을 거쳐 종심에 이른다면, 가히 성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 같은 성인이 아니라 보통의 우리에게는 이 말들이 어떤 풍향계가 되어줄 수 있을까요? 30세에 학문의 기초든 인생의 기초든 세우지 못한 채로 30세를 맞이하면, 아무래도 많이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이리저리 흔들리는 휘둘리는 정신을 가지고 40세를 맞으면, 예상치 못한 파도처럼 밀려드는 중년의 고비를 넘기가 힘들어질 겁니다. 50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남은 인생이 불행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60세에 귀가 뻣뻣해서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고 소통이 안 되면 어리석고 고독한 노인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마음 가는 데로 가고 싶다고, 마음이 하고 싶은 데로 하며 살고 싶다고 합니다. 언젠가 한번쯤 꼭 이르고 싶은 경지기도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이라는 과정을 계단처럼 밟아 올라야 한다는 것. 백세를 산다한들 뭐 그리 다를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8년 4월 19일 방송>
2. “이스라엘이 홍해바다를 건너다(21-31절)”을 읽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그냥 한가로운 구호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뒤에는 애급의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버티고 있다면, 제 정신을 차릴 수가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털썩 주저앉고 말 것입니다.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보이질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모세는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한 것입니다. “너는 너의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팔을 뻗쳐 물을 가르고 <중략>”(15절). 모세의 남다른 위인 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찾아야 합니다. 위기가 기회로 바뀐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위기를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크고 작을 뿐 어쩌면 셀 수 없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위기의 연속을 경험했다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송두리째 포기해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에게나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바라볼 때, 결과 위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을 택하곤 합니다. 그래서 일단 좋은 점수가 필요하다 말합니다. 장학생이 되고 장학금을 받으려면 필수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주저 없이 커닝이나 부정도 불사합니다. 여러 학과 학생들이 섞여서 수업을 받고 시험을 치루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교직과목이 그 중 하나인데, 조교도 몇 사람이 배정되어 시험 감독을 하지만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장학금이 절실한 저는 책과 노트를 펴놓고 답안지를 작성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는 눈이 뒤집혔습니다. 몇날 며칠 공부한들 그들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답안지를 다 작성한 후에, 교수님께 짧은 편지를 썼습니다. 기우러진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라고, 장학금이 절실한 학생이라고 소개한 후, 시험장의 모습을 조교에게 확인해 보시고 채점해 주시라고 말입니다. 다행히 A-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할 때(시 119:109-110) 기회를 얻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