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식단을 약속하는 우리 집 채전.
올해는 텃밭의 품종을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같은 자리에 같은 작물을 연작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아랫마을 김씨 아저씨의 충고를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작년 가을 김장 채소를 거둔 후에 곧 바로 마늘을 심었는데 올해는 사 먹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해를 마늘 농사에 기대를 했지만 본전도 못 건졌습니다.
한 접을 심었으니까 최소한 5접은 수확할 수 있어야 맞는데, 결론은 새끼들만 서너접을 캤으니까
본전에 훨씬 미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심는 자리도 완전히 바꾸기로 했습니다. 부추만 빼고 말입니다.
부추는 한해 살이가 아니어서 작년에 이어 계속 자라나니까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상추가 4종류, 케일, 청양고추, 피망, 산마늘, 대파, 당근, 수박과 참외 그리고 오이를 심었습니다.
사실 서툰 농사꾼이어선지 제대로 실하게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이곳에 계속 사는 편이 아니어서 물도 제대로 줄 수 없었고, 돌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심는 것만 해 놓고 통째로 하나님께 맡긴 셈이었습니다.
그러니 비가 많이 내리면 내리는대로, 적게 내리면 또 그런대로
심겨진 채소들이 얼굴을 제대로 들 수가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항상 미안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상추는 언제나 풍성하게 자랐고,
무엇보다도 오이는 신기할 만큼 몇 개씩 따서 아내를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기대가 큽니다.
웬지모를 자신감이 생깁니다. 요즘은 이를 근자감이라고 한다지요?
아무 근거도 없는 자신감 말입니다.
사실 저는 스무 다섯해를 농촌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농사를 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농사짓는 부모님이 시키는대로 이것 저것 했을 뿐,
어떤 구체적인 생각이나 계획을 가지고 농사를 지은 게 아니어선지
제대로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농사를 짓겠다는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건성건성으로 따라다닌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 많이 반성을 합니다.
목표가 있건 없건, 그 시절에는 그 때의 일에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고 말입니다.
그랬더라면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나름대로 농사꾼 흉내는 낼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저희 아버지 어머니는 농사를 잘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고구마와 감자를 수확할 때는 애기 머리통만한 고구마를 캐면서 환호성을 질러댔었지요.
텃밭의 잡초도 해마다 종류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어느 해는 비듬이 엄청 자랐는데, 올해는 어떤 녀석들이 찾아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처음 짓는 산마늘이나 피망 그리고 당근 등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산마늘은 잎을 따서 먹는다고 합니다. 그 맛도 궁금합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스승의 날이라고 가까이 사는 제자 한 분이 칼국수를 대접하겠다고 해서 나들이 했습니다.
그래도 훈장을 했었다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눈치도 없이 또 사설을 많이 늘어놓았습니다.
들을 소리만 마음에 남아 있기를 바라봅니다.
올해는 여러 분이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해서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다 약속을 잡았습니다.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시절이 아닙니까?
한국전 발발 70주년이라고 해서 뭔가 초청행사도 있었을 텐데,
미국에서만 참전 군인 12분이 유명을 달리했다고 합니다.
그분들의 평균나이가 여든여덟이라고 하니까, 저보다는 열 두살 위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스무살 미만의 젊은이들이 남의 나라를 위해 싸우러 왔던 것입니다.
요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그동안 대단하게 여겨졌던 서양 나라들의 민낯이 벗겨졌다 합니다.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모른체 휴지와 생필품을 사재기 하느라 치고 박고 다투는 모습이 보이고,
의료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의료 장비가 없어서 쓰레기 봉투를 뒤집어 쓰고 있다 합니다.
그러니까 성형수술이나 암 수술등 고가의 치료 기술은 최고 정점에 도달했으나,
기본적인 공공의료 부분에서는 낙제점수를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생명에 직간접으로 관계가 있는 부분은 소홀히 하고, 생명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에 신경을 써왔다는 것입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인생들이었습니다.
옷장 안에는 더 이상 구겨넣을 자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입을 옷이 없다고 합니다.
소비를 미덕으로 매일 부추기는 현대 상술에 바보들이 되어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우리 먹거리도 소확행을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채전에서 내가 키운 작물들이 가장 건강한 식품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또 내일 아침 채전에 나갈 생각에 마음이 설레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