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17. 부활절 여섯째주일] 아레오바고의 바울 설교의 초점. / 행 17:16-31.
묵상자료 6940호.
시편 80:8-12.
찬송 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곳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봄이 되면 무심코 흥얼대며 흥겹게 불럿던 그 노래. 화면속에서 눈물과 함께 울려퍼지는 그 노래가 오늘따라 한글자 한글자 알알히 가슴에 들어와 박힙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14년 4월 25일 방송>
2. 오늘은 부활절 여섯째주일로, 행전 17:16-31을 본문으로 “아레오바고의 바울 설교의 초점”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합니다. 부활절 기간(7주간)에는 구약본문을 사도행전이 대신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동역자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는 동안, 헬라 철학의 중심지 아덴의 자유토론광장인 아레오바고에서 설교하게 되었다는 게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사도 바울은 헬라철학의 양대 학파의 초대를 받아 아레오바고 토론에 참가했습니다(16-22a절).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밀의(密意) 종교나 자연신교처럼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신앙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한 일화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는 아덴의 양대 철학의 기둥으로,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쾌락이야말로 모든 삶의 근심과 죽음의 공포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스토아학파는 자연과 조화된 삶을 강조하며, 이성과 일치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도덕적이고 선한 삶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두 부류는 기독교에 반기를 들고 있는 집단으로, 감성적인 삶과 이성적인 삶을 따를 것을 요구하는데, 이 둘의 오랜 이론적 근거를 따른다 하겠습니다.
사도는 아덴 사람들 역시 하나님을 찾아 헤매고 있음을 설교합니다(22b-27절).
인간은 자신이 피조물인 이상 자신의 조물주를 찾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는 이 점을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아덴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살피다가 “알지 못하는 신”을 예배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생각이었을지 모릅니다. 신이 없다고 말하는 무신론자들이 흔히 말하는 신의 이름입니다. 사도는 바로 그 알지 못하는 신의 이름을 창조주이신 하나님이라고 알려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분으로, 인간에게 생명을 주셨고, 한 조상에게서 많은 후손을 주셔서 세상 곳곳에서 살게 하셨다고 설교한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들이 섬겨야 하고 예배할 분이 조물주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선포한 것입니다.
사도는 우리 조물주 하나님은 찾는 사람들 가까이에 계심을 설교합니다(28-31절).
감각에만 의존하는 에피쿠로스 학자들이나 이성에만 매달리는 스토아 학자들은, 눈을 가리고 허공에 손을 휘젓는 삶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대기권을 벗어난 우주선에서 지구를 바라본 한 미국의 우주 비행사는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를 찬양했으나, 또 다른 러시아의 우주 비행사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다 술회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한 사람은 우주에서 오묘하고 위대함을 발견하였고, 다른 사람은 그 위대한 우주에 눈을 뜨지 못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고, 우리의 감성을 깨워 주셔야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제 힘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이 믿음의 눈을 뜰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