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7. 성삼위일체 주일]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 창 1:1-2:3.
묵상자료 6961호.
시편 85:3-6.
찬송 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거울은 꽃들의 슬픈 표정을 보관하고 있다?” 양해귀 시인의 <거울/面鏡>이라는 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빈 집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거울을 노래한 시인데요. 오래된 거울 속에는 정말 그 거울에 비쳤던 모든 것이 그대로 보관돼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습을,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그대로 담고 있는 오래된 거울은 어떤 것일까요? 그 먼지를 닦고 용기를 내어서 거울을 들여다 보아야 할 시간입니다. <KBS FM 1, 풍류마을, 2014년 4월 28일 방송>
2. 오늘은 성삼위일체 주일로 구약성경 창 1:1-2:3을 본문으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생명의 기원을 밝히려는 노력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그 결과 생명의 기원을 이름 모를 아메바라고 가정(假定)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흑암에 있는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선포합니다.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인간 이성에 근거를 둔 이론으로는 우주의 신비를 풀 수 없습니다(1-2절).
우주의 기원을 밝히려면 최초의 물질을 설정해야 하는데, 진화론의 약점이 여기에서 드러나며, 창조의 신비를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것 또한 어리석은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창조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흑암가운데 있는 우주에 하나님의 기운이 흑암을 휘저어 질서 있는 세상을 만드셨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하늘이 땅 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길은 인간의 길보다 높고,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보다 높다.”(사 55:9)고 말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주의 신비는 인간이 풀 수 있는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믿어야 할 신앙의 과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의 말처럼, 인간이 믿음을 가질 때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신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현존으로, 창조와 섭리의 능력이며 사랑이며 구원입니다(3-31절).
천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엿새 동안에 만드셨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첫날엔 빛과 어두움을(3-5절). 둘째 날엔 하늘과 땅을(6-8절), 셋째 날엔 땅과 바다, 풀과 나무를(9-13절), 넷째 날엔 해와 달 별들, 풀과 나무를(14-19절), 다섯째 날엔 물속의 물고기들과 공중의 새들을(20-23절), 여섯째 날에 땅위의 짐승들과 인간을 지으셨습니다(24-31절). 그렇게 해서 천지는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탈리아 앗시스의 프렌체스코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외에 달리 할 것이 없다며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속 좁은 인간들은 엿새 동안에 어떻게 이 많은 것들을 만들 수 있느냐고 눈꼬리를 치켜뜹니다. 하루가 천날 같은(벧후 3:8) 하나님의 시간을 모르고 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이레 되는 날 쉬셨고, 만물에게 모두 쉬라고 명령하셨습니다(2:1-4).
며칠 전 어느 예배에서 아흔이 되신 선배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축사자로 오셨습니다. 일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하신다 했습니다. 쉬어야 할 때인데 일하는 것을 복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일하실까? 아니면 쉬고 계실까? 엉뚱한 질문을 하곤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가는 길을 지켜주고 계시니 말입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만드신 창조하신 세상을 보시면서 즐기며 기뻐하고 계십니다. 느린 손과 걸음으로 꽃밭을 돌보는 촌노처럼 말입니다. 가끔 울타리 너머로 전해오는 인사를 주고받고, 옛 얘기를 나누면서 말입니다. 참된 기쁨은 쉼에서 오는 때문입니다.
3. 오늘은 주성농인교회에서 설교를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