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그리스도의 훌륭한 일꾼이란. / 딤전 4:1-16.

박성완 2020. 6. 18. 01:39

묵상자료 6972(2020. 6. 18. 목요일).

시편 88:3-7.

찬송 37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또 다시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침이 되면 전 날의 슬픔만이 엄습합니다. 나의 작품은 음악에 대한 나의 이해와 나의 슬픔을 표현한 것입니다. 슬픔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 세계를 가장 즐겁게 하리라고 믿습니다.“ 슈베르트가 27살에 쓴 일기의 한 구절입니다. 바로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작곡하던 무렵이었는데요. 당시 슈베르트는 병원에 입원 중 이었고, 병실에서 뮬러의 시를 바탕으로 이 작품을 작곡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내가 찾은 노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스무 곡 중에 열 번째 곡, “눈물의 비보내드립니다. “시원한 오리나무 지붕아래, 우리 함께 다정하게 앉아 있었네.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우리 함께 다정하게 내려다보았네. 달도 찾아왔네. 별들도 뒤따라왔네. 그리고 함께 다정하게 은빛 거울을 들여다보았네. 나는 달을 바라보지 않았네. 별빛도 보지 않았네. 그녀의 형상을 그녀의 두 눈만을 바라보았네. 그녀가 기쁨에 찬 시냇물 위쪽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눈길을 보내는 것을 보았네. 물가의 작고 푸른 꽃들이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길을 보내었네. 시냇물 속에 온 하늘이 잠긴 듯 보였고, 냇물 아래 깊은 곳으로 나를 끌어당기려 했네. 구름과 별들 위로 시냇물이 명랑하게 졸졸 흐르며 노래로 울림으로 외쳤네. 친구여, 친구여, 나를 따르라. 그 때 나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거울이 일그러졌네. 그녀가 말했네. 비가 오겠어요. 안녕, , 집에 갈게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14617일 방송>

 

2. “거짓 교사들(1-5)”그리스도의 훌륭한 일꾼(6-16)”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어느 시대나 좋은 일꾼이 많을 때 나라나 사회 그리고 가정이 건강했습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좋은 일꾼을 힘써 찾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33년을 일하던 교회를 새로 지어 후임자에게 물려줘야 하는데, 후임자를 찾을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제자 훈련>으로 유명했던 고 옥한흠 목사님이 후임자를 고를 때 그 후임자의 부친을 주목했다고 했습니다. 시골 교회를 지키며 청렴했던 부친이라면 그 자식은 제대로 배웠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별세하기 얼마 전에 자신의 후임자에게 아주 쓴 말을 기록으로 남기셨습니다. “잘못 생각했다.”고 말입니다. 사도는 훌륭한 하나님의 일꾼을 이렇게 꼽았습니다. 첫째는 사도의 교훈을 교우들에게 일깨우는 사람, 둘째는 나이든 아낙들이 좋아하는 속된 이야기들을 꺼내지도 않는 사람, 셋째는 말과 행실에서 본을 보이는 사람, 넷째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읽은 말씀을 권면하는데 사용하는 사람, 다섯째 자신의 직무에 늘 깨어 있는 사람, 여섯째 자신을 늘 살피고 직무를 확인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덕목들은 요즘 지도자 덕목에서는 큰 비중을 찾을 수 없는 말씀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초심(初心)을 잃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합니다. 특히 지도자의 길에 들어설 때 단골 메뉴처럼 사용합니다. 제가 보관하는 추억 소환 물건 가운데는 대학교 시절의 학생 수첩과 스크랩북이 있습니다. 거기엔 제가 다짐하고 다짐했던 각오와 결심들이 적혀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 섬기는 사람, 찬송하는 사람이 되자.”는 글귀도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어느 한번도 최고가 되자 같은 다짐은 없었습니다. 얼마나 대견한 일입니까? 그런 쓸모없는 마음을 품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의 삶을 되돌아보면 엉터리 투성이 뿐입니다. 감사보다는 원망이 많았고, 섬기기보다는 섬김 받기를 좋아했으며, 찬송보다는 인간적 감성에 취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하나님의 일꾼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자주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지나갔습니다. 목회자가 되려고 했을 때, 많은 가족들이 걱정했습니다. 처자식을 제대로 건사(建事)할 수 있겠느냐는 눈치였습니다. 한 가지 기댈 믿음이 있었는데, 바른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이 길을 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가족들을 제구실 하도록 돌보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필요한 때 중요한 길목에 계셔서 인도하신 것입니다. 되돌아 보는 저의 삶은 저의 계획이나 노력으로 진행된 게 전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개입으로 소설 같은 일들이 이어져 간 것이었습니다. 정말 저의 삶은 기적같은 파노라마였습니다. 고학으로 고교부터 유학을 할 수 있었고, 목사로 은퇴할 수 있었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지 않습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