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거짓 교사들의 달콤한 가르침과 열정에. / 갈 4:8-20.

박성완 2020. 6. 29. 00:00

묵상자료 6983(2020. 6. 29. 월요일).

시편 89:23-26.

찬송 43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실은 그것 뿐. 나는 입에 잔을 들고, 그대를 바라보고 한 숨 짓는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술 노래입니다. 예이츠는 모드곤이란 여성에게 30년간 끊임없이 청혼했지만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가 훗날 미망인이 되었을 때도 청혼을 하지만, 거절을 당하지요. 52살이 되어서야 그녀를 포기하고, 26살의 아가씨와 결혼 했습니다. 그 사이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 젊었을 땐 우리 서로 사랑했으나, 무지했어라. 이런 주옥같은 예이츠의 사랑의 싯구절이 탄생했는데요. 그 중에 버드나무 공원을 거닐 던 소녀를 추억하는 시가 있습니다. 내가 찾은 노래 오늘은 예이츠의 시에 노랫말을 붙인 버드나무 공원아래들려 드립니다. “버드나무 공원아래 내 사랑과 나는 만났네. 그녀는 눈처럼 하얀 작은 발로 버드나무 공원을 지나갔네. 그녀는 내게 나무에서 잎사귀들이 자라듯, 사랑을 쉽게 생각하라 했네. 하지만 젊고 어리석은 나였기에, 그녀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네. 강가와 들녘에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네. 기울어진 내 어깨 위에, 그녀가 눈처럼 하얀 손을 얹었네. 그녀는 내게 뚝 위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쉽게 생각하라 했네. 하지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지금은 눈물만 가득하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1471일 방송>

 

2. “갈라디아 인들에 대한 바울의 걱정(8-20)”을 읽었습니다. 걱정과 근심이 없는 세상은 없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사람은 하루에 5만 가지 근심 걱정 속에서 산다는 말이 나왔을까요? 그러니 걱정이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우스갯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사도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자신과 복음에 대한 첫사랑이 식어가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듣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눈이라도 빼어 고치고 할 만큼 사도의 병을 고쳐주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싸늘하게 식어버린 사람들이 되어버렸으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사도와 갈라디아 교인들 사이를 갈라놓게 만든 것일까요? 단서는 16-20절에 암시되어 있는데, 매우 열성적으로 그들에게 접근해서 이간질하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사도가 지적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지금 심각한 위기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연 숭배자들처럼 날과 달 그리고 절기와 태양을 숭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자연 숭배자들은 특정한 날이나 달, 그리고 이름이 붙은 절기마다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고, 태양을 우주의 주인으로 섬기게 하였습니다. 제가 베트남 선교에서 많은 우상들을 보았습니다. 집집마다 신주(神主)를 모시고 있었는데, 매일 아름다운 꽃과 과일과 음식을 바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성탄장식처럼 네온사인을 해 두거나 화려한 장식들로 치장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신주단지에서 정신을 떼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 역시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할 틈을 주지 않고, 이런저런 제사지내는 일(꽃에 대해서, 과일에 대해서)에 정신을 다 쏟도록 한 것입니다. 신앙이란 매우 허술하고 허약한 면이 많습니다. 신앙이 병들거나 약해지는 것은 엄청난 사건으로 빚어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동북삼성이나 내몽고 그리고 몽골과 베트남의 오지를 다니면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런 민간신앙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한 순간이면 수년 동안의 수고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그들을 돌봐야 할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하물며 그들 곁에서 달콤한 속삭임과 열정을 쏟는 거짓 교사들의 모습을 뿌리칠 용기도 절실했는데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