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19. 성령강림절 후 일곱째 주일] 단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 / 사 44:6-8.
묵상자료 7003호.
시편 92:12-15.
찬송 3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평화를 가져다준다” 김종삼 시인은 <원두막> 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원두막에 직접 앉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 장소를 떠올리면 무엇인지 모를 평화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꿈꾸는 여름날의 평화, 그 원형이 원두막으로 상징되는 것 같아요. 초가지붕 그늘 바람 또는 소나기, 그 지붕 아래서 바라보는 소나기를 상상해 봅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장소. 그곳을 찾아서 나만의 원두막이라고 부르고 싶네요. <KBS FM 1, 풍류마을, 2014년 7월 24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후 일곱째 주일로, 구약 사 44:6-8 말씀을 본문으로 “단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바른 신앙생활이란 신앙의 대상이 분명해야 하고, 그 신앙의 대상을 잘 알아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구제할 수 없는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하는 이가 제자 미륵보살이라고 합니다. 보살이 더 능력자입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입니다(6절).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의 첫 글자와 끝 글자입니다. 물론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상징은 기억을 돕기 위해서 종종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처음이며 마지막이 되신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라는 의미입니다. 그 어떤 무엇도 하나님을 앞설 수 없으며 동시에 그 무엇도 하나님의 다음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을 때, 과연 하나님께서 이런 시련과 문제를 알고 계실까 궁금해 합니다. 그런 때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큰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우리들 삶의 문제를 아실뿐 아니라, 우리를 기억하시고 동행하고 계신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단 한 분이신 하나님입니다(6-7절).
유대인들은 쉐마(들으라!) 교리를 매일 수십 번씩 외웁니다(신 6:4-9). 그 첫 구절이,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유일한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입니다. 그리고 모든 부모들에게 이 교리를 귀가 닳도록 가르치고 외우게 하는 책임을 부과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중요한 진리라는 것이요, 둘째는 너무 자주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교육이 얼마나 철저한지를 배우는 대표적인 실례입니다. 마치 우리가 <주기도>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임을 잊지 않도록 끝없이 반복 교육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되풀이하고 되풀이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쉐마교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유대인의 가정교육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다. 든든하지 않습니까?
한 분 여호와 하나님 때문에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8절).
석가모니의 제자인 미륵보살은 석가모니가 구원할 수 없는 중생들을 모두 다 구할 수 있는 분이라고 가르칩니다. 석가모니의 한계를 엿보게 하며, 인간이 만든 일반 종교가 가르치는 신들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겁내지도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진지하게 묵상해야 합니다. 겁낼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겁낼 것도 두려워할 것도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실제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제가 키우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는데, 겁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걸 감추려는지 소리를 크게 질러댑니다. 그리고 산책을 나갈 때 만나는 커다란 개들 앞에서는 반드시 나를 쳐다봅니다. 그리고 주눅 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곤 합니다. 우리들 역시 만나는 현실은 힘겹고 두렵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할 때 새 힘이 생긴다는 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