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신념을 따라 살 필요. / 롬 14:13-23.

박성완 2020. 8. 12. 00:00

묵상자료 7027(2020. 8. 12. 수요일).

시편 99:4-5.

찬송 52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박 선배 보세요.

세상이 초록색으로 짙어지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앞산이 매일 조금씩 제게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일하는 틈틈이 그 정겨운 앞산을 바라보다가 선배 생각을 했어요. 지난 해 이맘때쯤이었지요. 그 때 전 제 마음이 쨍 금이 갔다가 서서히 부서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 때 누군가가 저를 잡고 살그머니 흔들어대면, 부서진 마음 쪼가리들이 부서진 마음들이 소리들을 들을 수도 있었을 만큼 엉망인 상태가 계속 되었지요. 겉은 멀쩡한데 내부는 모두 무너져 내린 채로 한참을 견뎌야 했습니다. 한 인연과 헤어지는 일은, 벽화처럼 선명한 서로의 기억들을 지워내는 일은, 그렇게나 힘들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선배가 전화를 걸어와서 걱정스럽다는 듯 슬쩍 물었어요. “어때? 아직도 힘들어?” 그 짧은 위로의 말 한마디가 얹혔을 뿐인데, 저는 무너져 버렸어요. 눈물이 터져 나왔고요. 그런데 기억나세요? 눈물이나 흘리는 못난 후배에게 선배가 했던 그 다음의 말이요. “거기 어디니? 지금 내가 갈게?” 그날 선배는 힘든 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는 슈퍼맨이었습니다. 정말로 한 달음에 제 앞에 나타났었으니까요. 전 아직도 그날의 제 눈물을 기억합니다. 부끄럽지만 고마운 눈물이라 여기지요. 잃은 것만을 연연해하던 제 어린 마음이, 그 날 그 눈물을 통해서 아니 더 정확하게는 그 눈물 곁으로 한 달음에 달려와 준 선배를 통해서 불쑥 자랐다고 느끼니까요. 그 봄날의 눈물과 지금 내가 갈게선배의 그 말이 정겹던 그 날. 제 마음의 나이테도 한 켜쯤 더 넓어졌겠지요? 선배, 그날, 정말 정말 고마웠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423일 방송> a.

 

2. “신념의 생활(13-23)”을 읽었습니다. 신념이라는 말은 본문에 세 번 나오는 단어인데, 헬라어 피스티스로 신앙이라는 말로 많이 쓰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신앙(faith)이 아니라 신념(conviction)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신앙인 역시 자기 나름의 움직일 수 없는 원칙적인 생각(신념 혹은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무조건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할 일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도록 하자는 뜻입니다. 그런데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신은 죽었다고 함으로 많은 오해를 불러왔습니다. 그가 말하는 신은 죽었다.”라는 의미는 기독교회가 추구하는 절대 선이며 초월적 가치인 신이 죽어야만 인간은 비로소 왜 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니체는 초월적 가치 대신 새로운 가치, 곧 더 이상 신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는 인간 스스로 신이 되고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기존의 가치에 예속되어 있는 사람 <최후의 인간>, 곧 남이 대학에 가니까 가고,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따라하는 기존의 가치에 매몰돼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고 안락함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초인> 기존의 가치를 넘어 새로운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는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 될 것을 주문합니다. 이를 요약하면 인간중심적 사상으로 발전합니다.

사도가 말하는 신념의 생활은 일상의 삶에서, 당시에 가장 핫(hot)한 문제였던 먹고 마시는 문제를 구원에 관한 신앙의 문제로 끌어들이지 말고,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라는 권고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야 말로 행복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매우 흥미로운 깨우침은 세상에 추하고 더러운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원효대사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신 일화와 얼마나 닮았는지 놀랄 지경입니다.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하는 것, 그것은 기분대로 혹은 제 멋대로 사는 것과는 분명 다른 것입니다. 인간다운 신념을 가질 필요와 그 신념에 따른 의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