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우리는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 요 5:19-29.

박성완 2020. 9. 7. 00:00

묵상자료 7053(2020. 9. 7. 월요일).

시편 104:24-27.

찬송 34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먼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딸에게> 너의 방에 산티아고 가는 어느 오솔길 사진이 걸리고, 또 네가 그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던 1년 전만 해도, 엄마는 그냥 또 하나의 웅덩이에 빠진 거겠지. 그러다가 어느 날 손 탈탈 털면서 관심을 끄겠지, 이렇게만 생각했었어.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잖니? 어떤 계기 때문에 뭔가에 한참 열중하다가 그 열기가 점차 식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되풀이 말이야. 그런 잠깐 잠깐의 열기, 뭐 나쁠 것도 없고 그러다가 식어버린다고 해도 크게 손해 볼 것도 또한 없지. 우리 삶 자체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단순한 패턴 속을 빙빙 도는 건데. 그런 짧은 열정조차도 느낄 수 없다면, 얼마나 답답하겠니. 얼릴 적에 네가 고집 부려 가면서 키운 다람쥐 기억나지? 먹고 자고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쳇바퀴에 올라서서 하염없이 통을 굴리곤 했었잖아. 인생을 딱 축소해서 먹고 자고 일하는 시간을 계산해 보면, 사실 그 다람쥐와 다른 게 뭐가 있을까? 엄마는 신나게 쳇바퀴 굴리는 다람쥐 보면서 늘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어. 그래서 하염없이 꾸역꾸역 걷기만 해야 한다는 곳으로 떠나서, 정말로 그냥 마냥 걸으면서 너의 인생을 찾겠다던 너의 계획도 그런 쳇바퀴를 벗어나려는 작은 열정, 잠깐 있으면 식어버릴 열정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1년 남짓 정말 감기가 심한 날만 빼고 아르바이트를 계속하고, 너의 방에는 관련 책자와 사진들이 늘어나더니, 어제는 드디어 비행기 표를 손에 넣었다고 만세를 부르더라. 그 순간 이 엄만 젊고 건강한 네가 정말 부럽고도 자랑스러웠어. 그래, 이 엄마가 편안한 신발 한 켤레 장만해 줄 테니까, 원 없이 걷다 오렴. 그리고 걷는 동안 너 자신과 너의 인생을 만나길 바래. 그런데 이 바보 같은 엄마는 아직 떠나지도 않는 네가 벌써 그립구나.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516일 방송> a.

 

2. “아들의 권한(19-29)”을 읽었습니다. 요한 복음서를 계시의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계시가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들어내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분이 육신을 입고(化肉) 세상에 오신 주님을 하나 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꺼내어 주는 역할을 요한복음서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조물주이신 하나님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경(不敬)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서 기자는 이런 엄청난 일, 그리고 어쩌면 위험한 일을 하려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물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일이지만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자신의 입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분명히 밝히고 계십니다. 일종의 직무설명(Job description)에 해당된다 하겠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의 일을 본대로 따르는 일, 둘째는 아버지는 당신의 일을 아들에게 모두 보여주셨고 아들로 놀랄만한 일을 시키신다는 점, 셋째는 아버지는 심판의 권한을 아들에게도 맡기셔서 아버지처럼 존경을 받게 하셨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은 충실하게 아버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일을 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잘 들어라.” 하시면서 예수님은 당신의 직무 중 가장 중요한 점을 꺼내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게 된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그냥 입으로 아멘! 할렐루야! 믿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곧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세상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 내려가셨으나 다시 살리시고 승천하시고 재림주로 오실, 일련의 예수 사건을 섭리하신 분이심을 믿는 일을 말합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그리고 지금도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믿습니다 는 말을 많이 하는데 진정성은 물론이고, 무엇을 믿는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고야 설교자의 흰소리까지도 아멘! 믿습니다!”라고 응답하니 말입니다. “아멘은 자신도 그렇게 믿는다는 동의의 의미이고, “믿습니다는 그 내용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반응입니다. 우리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서, 그 역할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매우 빈약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불만일 수 있지만, 성경은 우리가 구원받기에 필요한 말씀을 하신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겠습니다(딤후 3:15, 20:30-31, 11:14).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