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인간은 죄를 짓고,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신다. / 요 8:1-11.

박성완 2020. 9. 19. 00:00

묵상자료 7065(2020. 9. 19. 토요일).

시편 105:31-33.

찬송 44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친구에게> 깨지지 않게, 물론 포장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그래도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받을 때까지, 좀 마음이 쓰이긴 했는데, 받자마자 소식을 알려줘서 고마워. 네가 원래 마음 씀씀이가 따뜻하고 폭이 깊다는 것 다시 한 번 실감했어. 이번 작품 마음에 든다니까 조금은 우쭐해지려고 하네. 사실 내심 나도 이번 토기 찻잔들이 제법 마음에 들었거든. 흙을 만지다 보니, 유약보다도 흙의 아름다움을 더 캐내고 싶어졌다고나 할까? 있지, 가마의 온도를 제대로 잘만 높이면 흙이 품고 광물 성분이 녹아 표면으로 새 나와서 있는 저절로 토기의 윤기가 더해지거든. 대충 구워서 유약 발라서 그 유약의 번쩍거림으로 눈길을 끄려는 그릇들과는 그 반짝거림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새록새록 느끼고 있는 중이야. 게다가 그릇을 만들 때 물레를 돌리면서 새로 느낀 것인데, 널따랗게 대범하게 그릇을 빚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알았어. 그냥 좁다랗게 빚는 데는 크게 신경이 덜 쓰이는데, 날렵하면서도 널찍하게 품을 좀 넓히는 건 손도 많이 가고 빚기도 어렵고, 잘 빚었어도 구웠을 때 그 모양을 유지하기가 참 어렵더라. 그래서 그릇을 배우면서 인생도 함께 배우는구나. 생각하곤 해. 사람이 본래 타고난 제 그릇에서 마음을 한 뼘쯤만 더 넓혀서 조금만 더 큰 그릇으로 바꾸는데도, 아마 그만큼 정성을 들이고 신경을 써서 스스로를 닦아야 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초기에 공방이 어려울 때, 언제쯤 갚을 거냐고 묻지 않고, 네가 비상금 탈탈 털어서 보내줄 때, 너는 참 빚기 어려운 크고 고급스러운 그릇 같은 그런 마음을 지녔다고 생각했었어. 언젠가 너를 닮은 품도 넓고 깊이 있는, 그런 그릇도 한번 잘 구워보고 싶었을 정도로 말이야. 늘 고마운 친구. 다음에는 꼭 얼굴 보자.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519일 방송>b.

 

2. “간음한 여자(1-11)”을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청문회는 그 절차와 방법에 관해서만은 반드시 손을 봐야 하겠습니다. 이른바 인성이나 덕성 그리고 신변잡기에 관한 내용은 사전 검토로 일단락을 짓자는 뜻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 그리고 애국심 등을 청문회장에서 따졌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청문회는 첫 단계조차 끝내지 못하고 망신주기로 그 역할을 하는 듯 해 왔기에 정작 능력과 자질은 전혀 손도 못 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일화는 간음 현행범을 잡아서 예수께 데리고 온 일화입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아닌 제삼자가 문제를 제기한 고발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 고발자는 다수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모세의 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딱 걸린 경우입니다. 그런데 고발된 가해자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것이 특이합니다. 당시나 현재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은 여성보다는 남성일 확률이 훨씬 더 높은데 말입니다. 아무튼 한 여인이 끌려나온 것입니다.

   고발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몇 사람의 증인을 내세워서 인민재판식으로 즉결 처형하는 방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돌을 들어 내려치면 둘러선 모든 사람들이 돌로 쳐서 죽이는 방식 말입니다. 그런데 이 뻔한 재판을 예수께 가지고 와서 물어온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기자는 이런 일련의 고발사건을 예수를 고발할 구실을 만들려고 했다고 해설을 붙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사건은 공관복음서에서는 취급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고발자들의 의중을 훤히 들여다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모세의 법대로 시행하면 될 일입니다. 질문을 받으신 주님은 땅에 앉아 한참을 땅 바닥에 뭔가를 쓰셨다고 했습니다. 참다 못한 고발자들이 재촉을 하자, 주님은 고발자들을 바라보시면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를 돌로치라.” 말씀하시고 또 다시 몸을 굽혀 땅에 손가락 글씨를 쓰셨다 했습니다. 고발자들은 물론 구경꾼들조차 하나 둘 자리를 떠나갔고, 주님과 여인만 남게 되었을 때, 주님은 너의 죄를 묻던 자들은 아무도 없느냐?” 물으시고,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말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일화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의미는 첫째는 죄의 결과는 생명을 잃는 것이란 것과 둘째는 어리석게도 인간들은 서로 죄를 들추고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는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용문 가는 기차에서 <십자가의 영성>에서 다시 감동을 받았습니다. 평신도(Gene Veith, Jr.)가 쓴 책으로,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