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힘든 문제는 하나님께 물어보시길. / 요 9:1-17.
묵상자료 7070호(2020. 9. 24. 목요일).
시편 시 106:4-6.
찬송 32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원우씨 안녕하세요> 덕분에 모처럼 시집 한 권을 천천히 다 읽어 봤어요. 보내 주신 서시가 실려 있는 이성복 시인의 시집, 저도 참 좋아했었지만 오랫동안 펼쳐보지 못했는데, 원우씨 덕분에 맑은 시간 누릴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음, 계속 이렇게 딴청을 피우면서 공식적이고 예의바른 답장을 써야 하는 건지, 제 솔직한 마음을 담아 보내도 좋은 건지, 아직도 가늠하기 힘들지만, 원우씨의 편지 반갑고 고맙게 받아봤다는 마음만은 꼭 전하고 싶어서 이렇게 답장을 씁니다. 사실 진희 선배가 가끔 원우씨 전해 주곤 했었어요. 가끔 저에 대해 묻는다고요. 제가 지금 뭐하는 지, 어떻게 지내는지 원우씨는 그저 별 뜻 없이 안부나 묻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지만, 자기는 계속 다 읽을 수 있다면서, 그런 원우씨가 귀엽다고 했답니다. 남자에게 귀엽다는 표현을 해서 조금 언짢으신가요? 하지만 이건 제 표현이 아니라 진희 선배의 표현 이예요. 그 질문 한번 하려고 진희선배에게 점심을 몇 번이나 사셨다면서요? 제 무모함을 용감하다고 봐 주신 것 정말 기뻤습니다. 사실 집에서나 친구들에게서 조차, 순수함으로라기보다는 엉뚱하다고 받아들여졌으니까요. 입으로는 용감하게 제가 원하는 일 타령을 했지만, 사실 저 조차도 제 스스로를 잘 못 믿겠는 그런 때가 있습니다. 대개 몇 살 때는 무엇을 하고, 또 몇 살쯤에 이르면 어느 만큼을 성취하는 게 좋고, 이런 식의 규칙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어서 더욱 두려운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럴 때 받은 원우씨의 뜻밖의 편지, 큰 힘이 돼 주었습니다. 오늘 제가 편하게 내 속마음을 보내 줄 수 것은 여기까지 인 것 같습니다. 저도 추신으로 하나 부탁할 게 있어요. 앞으로 궁금한 게 있으면, 진희 선배 통하지 말고 직접 제게 물어 주세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5월 28일 방송> b.
2.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을 고치신 예수(1-12절)”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생트집(13-17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경우와, 생후에 의료 사고나 다른 원인으로 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제가 만난 장애우들은 대부분 중도 실명하거나 중도 사고로 청각을 상실한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경우든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까는 정상인의 입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만난 대부분의 장애우들은 이런 장애로 인한 고충보다는 오히려 장애우들을 대하는 차가운 사회적 눈길이 더 삶을 힘들게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어디를 가십니까? 제가 도와드릴까요? 저는 장애우를 돕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런 말을 듣는 것과는 달리, “아휴, 오늘도 재수 없겠네. 저런 병신을 만났으니 말이야.” 이런 말을 들을 때는 한없는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수십 번 다녀서 뻔한 길인데도, 못된 택시 기사가 삥삥 우회하는 것을 알면서도, 한 마디 항의하지 못하고 달라는 대로 요금을 지불하는 게 화가 나지 않느냐는 물음에, “어떻게 화를 냅니까? 욕설과 심지어 주먹까지 날아오는걸요. 아무 말 못하고 오히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걸요.” 이런 답을 할 때는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본문에는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우를 주님께서 고치신 유명한 일화입니다. “땅에 침을 뱉어 흙을 개어 소경의 눈에 바르신 후,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그 후부터 실로암 연못은 세상 모든 시각 장애우들이 일생에 한번은 가 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Bucket List)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장애우를 가운데 두고, 잔인한 질문을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리새파 사람들로, 이 사람의 장애는 그 부모의 죄냐 아니면 그 사람 자신의 죄냐고 물은 것입니다. 예나 제나 사람들은 모든 문제들은 죄를 지은 값으로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입니다.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전혀 달랐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인간에게서 찾으려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죄 탓도 부모의 죄 탓도 아니고,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말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도 문제 풀이에서 새로운 방향 전환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끼리, 서로 네 탓 내 탓하며 싸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높은 뜻 가운데서 찾아보자고 말입니다. 그러면 이 슬픈 삶은 절망만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과 위로 그리고 감사가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아픔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