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욕심 그리고 미움과 질투가 양심과 이성을 눈 멀게 한다. / 요 11:45-54.
묵상자료 7079호(2020. 10. 3. 토요일).
시편 시 106:34-36.
찬송 19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명준이 가족에게> 글 잘 읽었습니다. 벌써 불쾌한 마음을 떨쳐 버리셨다니 다행이다 싶네요. 저희 집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더라도, 떠나신 뒤까지 뭔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었는데, 홈 페이지에 올려주신 글 읽고, 이제야 비로소 마음이 놓입니다. 그때는 옆에서 뭐라 잘못 말하면 심기가 더 불편해지실까봐 말 못했는데요. 저희도 그 비슷한 일을 겪은 일이 잇지요. 그것도 물도 설고 말도 설은 타국에서요. 팬숀을 열기 전에 이젠 쉽게 자유 시간을 얻기 힘들겠다 싶어서 아내와 유럽여행을 하던 중이었는데, 그 유명한 이탈리아야 에서 아내의 지갑을 잃어버렸습니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호시탐탐 노리던 사람들에게 털렸다는 표현이 맞을 거예요. 소문을 들어서 여권이며 다른 중요한 것들은 호텔에 잘 모셔 두었기 때문에 크게 곤란한 일은 없었는데, 당장 지갑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들어간 카페에서, 마신 차와 케이크 값을 치룰 수가 없어서 혼이 났었지요. 난감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해서, 괜히 아내에게 짜증을 부렸지요. 조심 또 조심하랬는데, 뭐 했느냐고? 벌컥 화를 냈고, 또 아내는 아내대로 제 속 좁음에 화가 나서 가시 돋친 반응을 하고.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었어요. 이미 벌어진 일 되돌릴 수도 없는 일에, 부부가 낯을 붉히면서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카페 주인아저씨가 우리 사정을 눈치 챘던가 봐요. 머리가 하얀 노인네가 영어와 이탈리아를 섞어가면서, 문제없다, 문제없다, 저희 부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시더군요. 커피 값도 케익 값도 받지 않겠으니, 서로에게 화내는 대신에, 얼른 해결해서 계속 신나는 여행을 즐기라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더군요. 두 분이 지갑을 잃고 서로 신경을 팽팽하게 곤두세우고 있을 때, 닮고 싶을 만큼 여유 있고 낙천적이던 그 할아버지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한없이 서툴지만 흉내를 좀 내 봤다고나 할까요? 아, 그러고 보니 명준이 어머님이 말한 사람에 대한 희망 과 믿음은 이런 식으로 물길처럼 이어져 흐르는 것 같네요. 좋은 마음을 글로 표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8월 14일 방송> b.
2. “예수를 죽일 음모(45-54절)”을 읽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런데 그 미움이 오해에서 비롯되었거나 전혀 부당한 것이었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서글픈 일일까요? 어쩌면 이런 경우들이 우리들의 실제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저는 요즘 정치가들의 행태를 보면 이런 미움과 질투를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소셜미디어 덕분에 몇 시간만 지나면 가짜 뉴스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그 한복판을 휘젓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엊그제 미국 대선 주자들의 TV토론을 시청하셨을 것입니다. 거짓말을 가장 증오하던 미국인의 정서가 이제는 거짓말은 일종의 정치 도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대로 가게 된다면 미국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질 전망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어두운 세상이 될 수 밖입니다. 주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제1안건은 어떻게 예수를 죽일까 하는 의제였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신 사건이 도리어 죽어 마땅한 잘못으로 규정된 것입니다. 그런데 의장인 가야바 대제사장은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죽는 편이 더 낫다.”는 주제로 의견을 몰아갑니다. 가야바를 비롯한 유대 민족의 지도자들이 판단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다른 말로하면 예수 때문에 온 민족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유대민족이 살고 죽는 것이 예수에 달려 있다는 진단은 몇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는 종교적인 차원입니다. 예수가 살게 된다면 온 백성은 거짓 종교에 빠져버릴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둘째는 정치적인 차원입니다. 로마 식민지 치하의 유대의 운명은 예수로 인해서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고, 이 때문에 로마는 유대인을 말살하려고 할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진단은 모두 현실을 왜곡한 엉터리 진단이었습니다. 적어도 동시대의 상식을 가진 지식인이나 지도자라면 예수의 인격이 사이비 종교 집단의 교주노릇을 할 위인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로마 당국자들 역시 예수의 신앙운동은 로마에 맞서는 정치 운동으로 바뀔 것으로는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진단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미움과 질투라 하겠습니다. 선한 일에 박수를 치고, 악한 일에 분개하는 것은 당연지사이건만, 그들은 너무 좁은 생각으로, 코앞만 바라보는 어리석음 때문에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처럼.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