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4. 성령강림절후 열여덟째주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사는 삶. / 빌 3:5-14.
묵상자료 7080호.
시편 시 106:37-39.
찬송 50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애초부터 스스로 반짝 거리는 보석은 없습니다. 보석이 반짝거리기 위해서는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깎고 다듬어져야 하지요. 세상의 모든 빛나는 것들은, 그 빛을 위해서 제 몸을 깎는 아픔을 참아야 합니다. 홀로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역시 그 사람이 있기까지, 주위에서 기다려주고 힘을 보태주고, 때론 같이 아파했지요. 그냥 빛나는 것은 없다는 사실, 마음에 새겨 둡니다. 9월이어서 더 아름다운 것들도 그렇겠지요. 나무, 꽃, 하늘, 바람 이 모두가 9월이 되기 전까지, 부지런히 제 갈 길을 묵묵히 걸어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떠올려 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9월 9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열여덟째주일로, 사도서간의 말씀 빌립보서 3:5-14을 본문으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사는 삶”을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사랑이 밥 먹여주느냐?” “예수가 밥 먹여주느냐?” 첫 질문은 세대차를 느끼게 하는 물음이고, 둘째 질문은 신앙의 무게를 깨달지 못할 때의 물음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푹 빠진 사람이야기 입니다.
제대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5-6절).
젊은 날의 고뇌를 경험해 보신분이라면, 이른바 성장 통을 느껴본 분이시라면, 그 생채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람마다 대상이나 내용이 다를 수 있겠으나, 훗날 되돌아보면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올바른 사람이 되는 길을 찾아 힘든 길을 순례하였습니다. 바리새인으로 살기로 결심했고, 율법사의 고행을 감수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신앙인들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고, 실제로 앞장서서 박해자로 나섰습니다. 그것은 인간 자신의 도덕적이고 올바른 행동하는 삶(praxis)이라고 믿고 실천하였습니다. 신앙에 신념이 더해지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확신 인간이 된다고 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될 때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7-11절).
신앙을 정치의 도구로 이용하거나, 정치를 신앙에 접목시키려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최근 우리나라 대형 교회 지도자들이 저지르는 잘못된 행태입니다. 만일 그들의 속셈이 그 수준이었다면, 그들 역시 정치 모리배에 불과했습니다. 최종 목표가 세속적인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신앙의 영역을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율법적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인간을 정죄하고 참 자유를 빼앗아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율법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행동을 믿는 믿음의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바로 예수가 그 원대한 목표를 위해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때 참된 평화와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들린 행복을 고백하고 있습니다(12-14절).
대부분의 인간들은 세계의 중심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功)도 과(過)도 자신에게 돌립니다. 그 결과 평생을 힘들고 어렵게 살아갑니다. 이를 두고 율법적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매일 일기를 쓰시는 분들이라면 자랑스러움 보다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많은 삶을 살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걱정과 두려움을 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 인생을 탕자처럼 두 팔 벌여 맞아주시고 감싸주시며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한 사람들은 참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주님의 사랑에 붙들린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뒤따르며 살아가는 삶 이외에는 달리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었습니다. 신학 용어에 “이미 그러나 아직/ already but not yet.” 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울 같은 크리스천의 삶의 철학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