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믿음 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 / 요 12:37-43.

박성완 2020. 10. 9. 00:00

묵상자료 7085(2020. 10. 9. 금요일).

시편 시 107:4-7.

찬송 34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형철이에게> 형철아, 너 이런 말 들어봤니?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의 빈자리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은 바로 그 누군가를 가장 열심히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말. 그 자리에 나온 이유가 바로 그 사람을 만나보기 위해서 옅기 때문에 그 사람의 부재를 실감할 수 잇다는 이야기이지. 너 없는 동안 가끔 우리끼리 우르르 만날 때마다 난 그 말을 생각했어. 네가 절대로 그 모임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함께 모이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 때마다 난 너를 생각했지. 너의 빈자리를 느꼈고, 너의 빈자리가 곧 채워지기를 바랬어. 네가 군대에 가 잇는 동안 그렇게 난 널 기다렸단다. 그리고아마, 그런 담담한 기다림의 시간들이 편지를 쓸 용기를 심어 주었을 거야. 무사히 되돌아 주어서 정말 고마워. 네가 이렇게 돌아와 주었으니, 이젠 난 널 기다리면서 내 자신과 한 약속을 실천하려고 해. 너에게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밝히겠다는 약속 말이야. 지금까지 머릿속으로 참 여러 장의 편지를 여러 가지 다른 구성으로 써 보기도 했는데, 그냥 다 생략하고, 하고 싶은 말만 할게. 글쎄 우리가 여럿이 함께 섞여서 몰려다니고 공부도 하고 여행도 한 세월이 좀 되지. 넌 어떨지 모르지만, 그동안 내 마음의 초점은 너에게 맞춰져 있었던 것 같애. 그리고 네가 잠시 우리 곁을 떠나 있는 사이에, 난 그런 내 마음을 재확인했어. 나에게 넌 그냥 친한 이성 친구 정도가 아니었던 거야. 네가 멀리 떠 있는 동안에, 난 그런 내 감정을 확인하고 재확인해 봤어.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란 것 까지. 그래서 결심했지. 되도록 빨리, 되도록 많은 시간을 너와 함께 보내고 싶다고 말해야 갰다고 말아. 나의 감정에는 자신 있지만, 너의 마음이 어떤지에 대한 확신은 아직 부족해. 형철아, 너도 한번 잘 생각해 보지 않을래? 예의나 배려 뭐 이런 감정을 섞지 말고, 나에 대한 너의 솔직한 감정만을 한번 잘 헤아려 보고, 대답해 주면 좋겠어. 난 우리가 한번쯤 이렇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820일 방송> a.

 

2. “유대인들의 불신(37-43)”을 읽었습니다. 믿는 것과 믿지 못함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환경적 요인도, 경험의 공유(共有) 여부도 아니었습니다. 똑 같은 시간에 똑 같은 자리에서 엄청난 기적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사람을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라고 말입니다. 이런 질문과 그 대답을 터득한 사람은 예수님 당시로부터 7세기 전의 선지자 이사야였습니다. 그는 눈을 가지고도 보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을 눈앞에 두고도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육체의 눈과 마음의 눈을 멀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신비라고 생각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을 볼 때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비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정의했던 것입니다(2:8). 그리고 이 믿음은 사람의 행위에 대한 상으로써가 아니라, 순전한 선물이라고 말입니다(2:9).

   그러니 누구도 이 믿음이라는 선물을 받지 못한 사람은 믿음의 신비를 누릴 수가 없음은 물론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체험 신앙을 얘기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직접 경험해 봄으로 믿음에 이른다는 주장인데, 이런 주장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는 유대인의 경험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4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유대 광야에서 매일 신비를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아침에는 흰 좁쌀 같은 만나가 지면에 하얗게 내려앉고, 저녁이면 공중을 날던 메추라기가 지면에 내려와 사람들의 손에 잡히는 체험을 비롯해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땅의 열기를 식혀주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차가워지는 광야를 덥혀주는 마술 같은 경험을 말입니다. 그 밖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체험들을 한 그 백성이지만, 놀랍게도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보다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패역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바리새파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들로 치부하지만, 우리들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의 눈을 뜨게 하시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믿게 해달라고, 주님을 구주로 믿게 해달라고 기도할 이유가 예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