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적이고 영원한 평화는 시작되었다. / 요 14:15-31.
묵상자료 7092호(2020. 10. 16. 금요일).
시편 시 107:31-32.
찬송 47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징검다리 회원들께> 출판사를 통해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아 보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책이 나온 지 몇 달이 흘렀는데, 출판 시장에서의 반응도 독자의 반응도 너무 미약해서, 혼자서만 조금 안타가워하고 있던 차라, 징검다리 공부 동아리 모임에서 보내온 한 장의 편지가, 제게는 큰 위안도 되고 효과 적절한 회초리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함께 모여서 원서와 번역본을 대조해 가면서 공부해 나가는 동아리 회원들이라 그런지, 책 전체를 정말 꼼꼼하게 제대로 다 읽고서 써 보내준 감상문 고마웠습니다. 특히나 지적해 주신 부분들 잘 검토해 봤습니다. 그 중에 한 곳은 나중에 혹시 판을 다시 찍어낼 기회가 있을 때, 꼭 바로 잡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완전한 오역은 아니라지만 단어가 갖는 깊은 뜻을 잘 살려내지 못한 번역이라는 회원들의 지적이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동의합니다. 여러 과찬의 말보다도 제게는 그렇게 아쉬운 부분을 지적해 주신 매서운 손끝이 더 고마웠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지적 하실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관심을 갖고 차분하게 읽어주셨다는 뜻일 테고, 또 그 말은 저만큼이나 아니 저보다도 더 큰 애정으로 저자의 그 책을 아낀다는 뜻도 될 테니까요. 요즘 전 세계 출판 시장이 위축돼 가고 있다고 하지요. 그런 가운데서도 문학 공부를 하는 공부 동아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공부한 결과를 모아서 출판사와 번역자에게 그리고 저자에게 묻고 알리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이 제겐 참으로 신선하고 듬직하게 다가왔습니다. 희망의 출입구를 봤다고나 할까요? 계속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10월 9일 방송> a.
2. “성령의 약속(15-26절)”과 “예수의 평화(27-31절)”을 읽었습니다. 두 번째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평화를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 지, 이를 장려하고 치하하는 국제적인 성격의 평화상이 세계에 42개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놀랄 것입니다. 노벨 평화상을 비롯하여, 간디 평화상, 서울 평화상, 시드니 평화상, 심지어 레닌 평화상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평화를 위해서 힘쓴 사람들을 앞세워서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려는 복심(腹心)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평화상을 주는 목적이 선한 영향력을 끌어내려는 의도라고 할 때 가상(嘉賞)하다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당신이 주신 평화는 세상의 것과는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주는 평화는 무엇이고, 주님께서 주고 가시는 평화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우선 세상이 주는 평화란 어떤 것입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42종류의 평화상들은 세상의 각종 문제들을 풀고 평화를 가져온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빈민 구호나 질병 퇴치, 분쟁을 멈추게 하거나 부의 재분배에 공헌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평화 만들기는 임시방편적인 것으로 항구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주신 평화는 항구적이라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후, 아버지께 갔다 오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해야 맞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 아버지께 가시는 일에는 여러 목적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영원한 평화, 항구적인 평화를 뒷받침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평화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늘 모시고 살아가는 신앙생활에서도 세상은 온갖 문제들이 가득합니다. 사실 주님을 만난 우리들은 평화의 희망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박해를 받고 있는 이들도 있고, 온갖 모함과 위협 그리고 시시각각 엄습해 오는 두려움들 속에 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들 삶의 외적인 현상입니다. 그들은 이미 주님께서 주신 평화, 강렬한 내적인 평화는 시작되었고 주님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이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든 부르기만 하면 달려오실 주님을 모시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평화 역시 “이미, 그러나 아직 완전하지 않은/ already, but not yet.”의 상태인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는 신앙의 모든 영역이 이런 상태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