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나지 않는 일에 힘쓰는 일꾼들. / 고전 3:10-23.
묵상자료 7131호(2020. 11. 24. 화요일).
시편 시 117:1-2.
찬송 37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멋 진 애인 아빠께> 편지 잘 읽었어요. 절 평생의 애인이라고 불러 준 것 하나도 징그럽지 않고요, 오히려 황송하기만 했어요. 아빠의 애인 그렇게 잘난 사람도 아니고 가끔은 심하게 못난 짓을 할 때가 있는 바보이기도 하니까요. 제가 제일 한심해 하는 부분이 뭔지 아세요? 돌이킬 수 없는 것에 연연하는 거예요. 학교에서 시험 볼 때도 그랬어요. 한 과목 한 과목 시험을 마치고 쉬는 시간이 되면, 당연히 다음 시험 볼 과목을 뒤적거려야 정상이잖아요. 그런데 바보 같은 저는 꼭 이미 조금 전에 끝난 과목을 뒤적거리곤 했지요. 애매한 것들, 맞았는지 틀렸는지 확신이 안서는 것들을 확인하면서 좋아했다가 안타까워했다가 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다 보내버린다니까요? 수능 날도 마찬가지였어요. 다른 대범한 친구들은 어쨌든 끝이 났다, 홀가분하게 손 털고 나가는데, 전 자꾸 알면서 틀린 것들, 실수한 것들, 중요하지 않다고 넘겨버렸는데 시험에 나온 것들. 그런걸 생각하느라고 머리에 쥐가 났었지요. 그러다가 엄마 아빠가 절 기다리고 서 계신 모습을 보자 바보처럼 울고 말았던 거예요. 그런데 아빠는 이런 못난 딸을 평생의 애인이라고 불러주시네요. 갑자기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에요. 그러면서도 제 실수를 또 깨달았지요. 이 나이 되도록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구나, 이런 깨달음요.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 순간에 저는 가끔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 것 같애요. 그날 무사히 시험장까지 데려다 주고 또 끝날 시간에 맞춰서 나란히 서서 기다려 주신 것 정말 고마웠어요. 그런 고마움들을 생각하면, 전 제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3살까지의 일들로,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다 갚았노라고 절대 큰소리 칠 수 없지요. 언제나처럼 제 자유를 존중해 주면서도 적절하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짚어 주시는 아빠의 센스. 이번 편지를 통해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어요. 아빠, 고맙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11월 24일 방송> b.
2. “하나님의 일꾼(10-23절)”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나는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살아가는 모습을 요약해 보면, 악마의 종노릇이거나 하나님의 종노릇 중에서 어느 하나를 살고 있다 하겠습니다. 코로나19 대 유행 시기는 평소에 관심이 없던 타종교에 대해서도 많은 깨우침을 줄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종교 TV를 시청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입니다. 오래 전에 고향 친구인 한 조계사 승려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성경을 거의 매일 읽고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데, 너도 금강경이나 화엄경도 읽어 봤으면 좋겠다. 그도 아니면 불교 방송을 시청해도 좋고.” 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채널을 돌렸는데, 마침 남원 실상사의 회주인 도법 스님의 출가이야기를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출가한지 55년째라는 그분은 인생의 허무에 대해서 깨닫고자 선문에 들어갔는데, 아직도 깨닫지 못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불교나 타종교의 가르침을 배우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많은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거짓 없는 그 해맑은 마음들 말입니다. 40년 전에 부산에서 우연한 기회에 안동의 두봉주교님을 만났는데, 참 더할 수 없이 깨끗한 성직자로 보였습니다. 자신을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주교 정도 되면 우쭐할 만도 한데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읽노라면 그가 얼마나 솔직하면서 동시에 연약한 사람이었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다른 사람이 지을 건축물의 터를 닦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기초를 놓는 일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표 나지 않는 일입니다. 죽을힘을 다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인 복음을 전하지만, 겪은 수모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열매를 따 먹는 이들은 엉뚱한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일을 기쁨으로 열심히 하였던 것입니다. 사도는 기초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그 기초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 라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제가 잘 아는 목사님이 있는데, 무던히도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급여도 형편없었고, 말썽꾸러기 교인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은퇴하실 때까지 바보처럼 표 나지 않는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