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방인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품어야. / 롬 15:7-13.
묵상자료 7134호(2020. 11. 27. 금요일).
시편 시 118:9-11.
찬송 25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친구 같은 고모에게> 고모가 처음 수화로 제게 말을 걸었던 때 기억나세요? 그 때 고모가 수화로 처음 제게 했던 말이 무엇인지는요? 고모는 벌써 잊었는지 모르지만 저는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제 장애, 제 불편함 때문에 차츰차츰 더 짜증을 부리던 시절에, 고모는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고, 수화로 제게 말을 걸어왔었지요. “나는 너를 사랑해.” 이렇게요. 저와 더 잘 소통하기 위해서, 제게 말을 걸어주고 또 제 말을 들어주기 위해서, 고모는 매일 밤 회사가 끝난 뒤에 수화를 배우러 다니셨다지요. 그런데 고모, 며칠 전 제가 시무룩해 있을 때 그러셨지요. 너도 우리와 똑 같다고. 그러니 기운을 내라고. 그런데 전 그 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그 말을 무시해 버렸지요. 그래놓고 며칠 동안 왜 제가 그랬는지를 생각해 봤지요. 고모가 좋은 뜻으로 한 격려의 말에 왜 제가 서운한 느낌을 받았을까? 왜 고모가 애써 배운 수화로 정겹게 말을 걸어오는 것조차 무시해 버렸을까? 생각해 보니까 어렵푸시나마 그 이유를 알 수 있겠더군요. 듣지 못하는 저는 고모가 말하듯, 그처럼 쉽게 아, 나는 다른 사람들과 똑 같다. 똑 같은 권리 똑같은 인권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생각돼지지 않거든요. 매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점 때문에 힘든 제 입장에서는, 넌 우리와 같다, 이런 말에 쉽게 공감할 수 없다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고모가 제게 진심으로 해 주고 싶은 말, 저를 만나면 늘 강조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점차 깨달아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점에서, 넌 우리와 다를 바 하나 없다는 그 말을 하고 싶으셨던 거라고 생각해요. 맞지요? 가끔 제가 제 입장만 생각한 채, 며칠 전처럼 제 멋대로 무리하게 굴더라도, 잘 좀 봐 주세요. 저를 위해 수화까지 배운 고모는, 언제나 저의 최고의 친구라는 것, 아시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11월 26일 방송> a.
2. “서로 받아들여라(7-13절)”을 읽었습니다. “Black Lives Matter/ 약자 BLM”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경찰의 잔인한 진압 사고에 대항하는 비폭력 시민불복종을 옹호하는 조직화된 운동을 말하는데, 2013년 결성되었으나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이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강경 진압해 사망에 이르게 함으로 재 점화된 인종 차별 반대 운동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일본에서는 혐한(嫌韓)을 조장하는 일본우익 단체들이 끊임없이 재일교포와 한국인들을 괴롭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유대인들이 경멸하고 싫어하는 이방인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서로 증오와 미움을 버리고 받아들일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방인의 사도라고 공언한 바울에게 있어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를 확실하게 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였을 것입니다. 차제에 우리들 역시 선민사상에 붙박혀 있는 유대인들에 대해서 과연 성경이 의도한 선민사상의 참 뜻을 이해하고 이런 차별의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을 기점으로 이전을 선사시대 이후를 역사시대로 분류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이전의 기록들은 자연히 신화적인 요소들이 들어있음은 물론입니다. 이른바 하루가 천년 같다는 계시록의 말씀이 준용되는 시대 말입니다.
창 12:1-3은 선민사상을 언급하기에 매우 적합한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가라 명령하십니다. 그러면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받아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이 중요합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중략>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민으로 부르신 목적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도록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모든 민족 위에 으뜸이 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는 도구로 부르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선민사상이 오해되고 왜곡되어서, 자신들만의 하나님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도 같은 정신을 찾을 수 있는데,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것은 자신만 멋진 세상을 살도록 하심이 아니라, 다 함께 행복한 삶을 살도록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이방인의 하나님으로, 서로 사랑하는 인류공동체를 기대하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