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육체적 노동은 신앙과 삶을 건강하게 합니다. / 살후 3:6-18.

박성완 2020. 12. 12. 00:00

묵상자료 7149(2020. 12. 12. 토요일).

시편 시 119:37-40.

찬송 37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바느질을 생각하면, 두 개의 상반된 그림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만종>으로 유명한 장 프랑스와 밀레의 그림, 제목 그대로 <램프 불 옆에서 바느질 해 주는 여인>입니다. 젊은 여인은 머릿수건을 쓰고 두터운 옷을 입은 채 누군가의 옷을 바느질 하고 있습니다. 옆으로는 아이가 곤히 누워 자고 있지요. 그 사이 긴 막대에 걸린 램프 불빛이 환합니다. 그 램프 불빛 때문인지 혹은 방안의 온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반대로 여인의 옷차림이 말해주듯, 실내지만 추운 방안형편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잠든 아이의 볼도 여인의 볼도 빨갛습니다. 그 빨간 볼과 여인의 머릿수건이며 램프가 걸린 긴 막대가 밀레가 한결같이 그림에 등장시켰던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면서도 또한 밀레의 대부분의 그림들이 그렇듯, 위쪽의 환한 램프 불빛이 그렇게 따뜻하고 밝고 다정할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의 바느질 그림으로, 미국화가 윌리엄 윌리스 귈 클라스트 주니어의 그림이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바느질 분위기는 밀레의 것과는 정 반대이지요. 여인은 화려한 꽃무늬의 파란 색 옷을 걸친 채, 분홍색의 파티 드레스를 바느질 하는 중입니다. 여인이 입고 있는 화려한 겉옷과 약간 흘러내린 겉 옷 사이로 들어난 어깨며, 앞 쪽으로 길게 펼쳐진 분홍색 드레스가, 여인이 곧 그 파티 드레스의 주인공임을 짐작케 해 줍니다. 그러니 그 바느질에선 상류층의 화려한 파티와 무도회가 느껴지지요. 그렇게 대조적인 두 바느질 그림을 들여다보노라면, 이런 걸 바라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두 가지 상황이나 마음을 다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으면. 어떤 날은 저 밀레의 그림 속의 여인처럼 검소하고 소박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저 파티 복을 바느질 하는 여인처럼 들뜨고 설레기도 하고. 일상이 너무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지 말고, 양쪽을 다 살기도 하고 다 이해하기도 하기를 바래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1128일 방송>b.

 

2. “게으름에 대한 경고(6-15)”작별 인사(16-18)”을 읽었습니다. 크리스천이 게으를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로 생각했었습니다. 크리스천은 두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야 하는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군주를 위해서 충성해야 하고, 동시에 하늘의 군주를 위해서 충성해야 하는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게 있어서 게으름이란 어떤 것일까요? 첫째는 노동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둘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없으니까 남의 일에 참견하는 문제입니다. 셋째는 타인에게 기생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현상은 일반 사회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 달을 제가 시무하던 교회 기도실을 찾아와서 몸을 녹여가던 노숙자가 있었습니다. 대전 어딘가에 산다고 했습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노숙인 생활이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아무 근심걱정이 없는데, 그날그날 자기 자신의 숙식만 해결하면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말로 설득해서 노자를 준비해서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때 노숙인 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인생의 멍에에 대해서 무책임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천들 가운데도 이런 무책임함과 함께 다른 사람에게 빌붙어 편히 사는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후자의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자신들이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밤낮으로 수고하며 노동하였던 것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교인들에게 모범을 보이려고 했다고 술회합니다. 그리고 사도는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 는 말을 종종 하였다고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동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한국 사회는 노동에 대해서 잘못된 인식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첫째는 일하지 않고 노는 것이 나은 삶이다 는 생각, 둘째는 삶의 의미를 일하지 않는 것에 목표를 두는 생각 등입니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습니다만, 그래도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은 육체적 노동을 기피하는 경향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대신 헬스클럽에 등록해서 땀을 많이 흘리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운동을 따로 하지 않더라도 적절한 노동만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아닐 수 없는데 말입니다. 하루해를 넘기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오늘 밥값을 했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것은 노동을 통한 건강한 삶을 셈해보는 일이기를 바랍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