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지도자들로부터 교회를 지키라. / 벧후 1:12-21.
묵상자료 7152호(2020. 12. 15. 화요일).
시편 시 119:49-52.
찬송 24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정우 씨에게> 편지 받은 뒤, 연거푸 두 번을 읽어봤습니다. 덤덤하게 제가 일을 참 잘하더라는 칭찬의 편지 같기도 했지만, 의외로 마음을 설레게 하는 구절도 들어 있는, 이상하고 재미있는 편지였거든요. 사실 지금 일이 졸업하고서 처음 잡은 일이었고, 제 전공과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일에 마음을 붙이기가 참 힘이 들었습니다. 여기저기 사람을 만나러 다녀야 하는 거며, 노골적으로 지루해하거나 귀찮해 하는 사람들에게 제품을 소개하는 일이 힘들어서, 다른 일은 없을까 고민도 많이 했고요. 너무 힘들었던 어떤 날에는 퇴근한 뒤에 제방에 숨어서 펑펑 울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엄마에게 들켜버렸지만요. 그런데 엄마가 그러시더군요.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제대로 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싫어하는 것은 아니냐고요. 자신의 하는 일을 중요한 일로도 하찮은 일로도 만드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그런데 참 재미있지요. 조금 전까지는 펑펑 울고 있었던 사람이 엄마의 그런 조용한 설득에 귀를 기우리고 있겠지요. 마음을 담아서 얘기하면 사람들이 귀를 기우려주기도 하겠구나, 싶었지요. 그렇게 제 일에 조금씩 마음을 붙여 나갔던 것 같애요. 그리고 아주 조금씩이나마 반응이 오고 있어서 참 즐겁고요. 특히나 정우 씨의 편지는 그 중에서도 가장 특별하고도 설레는 응답이었습니다. 편지를 마무리해야 하는 이쯤에서 저도 슬쩍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써 볼까요? 그 날 제 설명을 가장 열심히 들어주고 질문도 열심히 해 준 사람이, 정우 씨라는 저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답니다. 저도 그런 고마운 마음을 담아 답장 보냅니다. 어쩐지 답장에 답장, 많이 기다려질 것 같네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12월 11일 방송> b.
2. “하나님의 부르심2(12-15절)”과 “그리스도의 영광과 예언의 말씀(16-21절)”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신비한 일이며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리고 이런 부르심은 어떤 특별한 음성이나 이상한 환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으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신앙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목회할 때, 한 할머니가 신앙 상담을 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자신은 불교도인데 손자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반대한다며 아무리 말려도 교회에 가겠다니 어쩌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도움을 청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을 드렸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자신이 믿고 싶다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러내셔야 하는 것이므로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말입니다. 그 손자가 주일학생이었는데, 그 뒤에 어찌 되었는지는 확인해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사람의 힘이나 노력으로 가지고 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믿겠다는 의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감동 감화시키지 않으면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락에서 사도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대해서 거짓 가르침과의 차별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꾸며낸 신화가 아니라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목격한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신화는 근거를 댈 수 없는 거짓말임에 반해서,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변화산상에서 제자들이 목격한 사실을 근거로 말합니다. 둘째는 거짓 교사들이 말하는 신화는 해석이 분분할 수 있지만, 성경이 증언하는 예언의 말씀은 아무나 임의로 해석할 수 없음을 밝힙니다. 까닭은 성경의 예언은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 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도 성경을 통전적(integrity)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선지자 학교가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도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신학교를 암시한다 하겠습니다. 항상 기독교 신앙을 곡해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신학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의 개인적 체험을 주장하는데서 발생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