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고 깨달을 기회를 준 낙서 교육법. / 요 7:53-8:11.
묵상자료 7167호(2020. 12. 30. 수요일).
시편 시 119:109-112.
찬송 48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올해 주인공인 아내에게> 처음에는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했었지. 다들 올해의 빅뉴스를 선정하는데, 우리 집 최고의 뉴스도 한번 조사해 볼까 그냥 이런 마음. 그런데 각각 따로 물어봤는데, 우리 아이들 대답이 다 똑같더라고. 엄마의 수술이 성공해서, 올해가 가기 전에 퇴원한 것이, 금년 우리 집의 가장 신나는 빅뉴스였다는 군. 반대로 애들이 내게 같은 질문을 했어도, 내 대답 역시 마찬가지일거야. 당신은 그저 당장 아쉬우니까 불편했으니까 그런 거라고 했지만, 마음으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 알지. 불편함이야 남은 가족이 조금씩 노력해서 메워 나갔지만, 집이라는 공간에 당신이 없다는 그 공백은, 당신이 퇴원하기 전까진 절대로 메워지지 않더라고. 당신 덕분에 병상에서 뒤적거린 책 가운데, 우리 그림을 읽어주는 직업을 가진 작가가, <파적도>라는 김덕신의 그림을 아주 재미나게 설명해 놓은 게 있었어. 조용한 뒤뜰에 도둑괭이가 한 마리라 스며들어서 병아리를 물고 도망치는 중인데, 그걸 잡으려던 남정네가 마루에서 넘어지는 것을 본 아낙은, 병아리나 고양이는 안중에도 없이 그런 남정네부터 챙기는 장면이지. 작가는 그 평범한 그림이 우아하지 않은 부부 사이를 그 어떤 인연간의 사랑보다, 아름답게 승화시킨 그림이라고 생각한다고 썼더군. 당신이 누워 있는 병실에서 그 글과 그림을 보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려 지더군. 그닥 크게 다칠 것 같지 않은 야트막한 마루에서 떨어지는 남정네를 향한 아내의 크게 놀란 모습 커다란 동작은, 당신이 늘 내게 보여주던 관심이기도 했지. 당신의 발병과 수술을 겪으면서, 이젠 내가 그런 모습을 더 자주 보여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수술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와 주어서, 우리 집 최고의 뉴스의 주인공이 된 당신, 이제 부터는 아무 일 없이도 항상 최고의 뉴스를 주는 존재로 늘 곁에 머물러 주길 바래.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12월 31일 방송> a.
2. “간음한 여자(7:53-8:11)”을 읽었습니다. 이 일화는 요한복음서 기자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료라는 점인데,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랍비처럼 사람들을 가르칠 때,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이 한 여인을 끌고 들어와서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사람이라고 하며, 레 20:10이나 신 22:22을 들어 당장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기록되었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떠냐고 물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신 후, 땅에 앉아 낙서를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여행 중에 예수님이 낙서하셨다는 곳이라며 찾은 분들은 돌에 새겨진 흐릿한 그림인지 글자인지를 보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상상력을 동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난처한 상황에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무엇이라고 쓰셨을까? 그냥 아무 의미 없는 낙서였을 것이다는 생각과, 유의미한 낙서를 하셨을 것이다는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은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들을 향해서 자기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다 떠나가고 예수님과 여인만 남았습니다. “그들은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위기일발의 순간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오래 전에 어느 대학 교목실에 한 여자 교수가 찾아왔습니다. 이 대학 교목실 실장 목사님은 군목 출신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분은 교직원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는데, 기도를 마친 다음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주먹을 불끈 쥐고 구호를 선창하고 학생들은 후창을 했다고 합니다. “알기 위해 배우자. 실천하기 위해 배우자.” 등등이었습니다. 여자 교수님은 “목사님, 학생들이 데모할 때 사용하는 주먹 쥐고 하는 구호, 이젠 알만큼 알아들었으니 그만둬도 되지 않겠습니까? 목사님!” 하더랍니다. 그때 교목실장님은 예수님이 난처한 질문을 받고 낙서하셨던 일화를 떠올렸더랍니다. “교육은 반복입니다.” 라고 말씀하신 후 낙서에 들어간 것입니다. 한 10여분 동안 더 이상의 말이 없을 것 같아,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하고는 일어나 나가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화를 생각한다면 세 번째 가능성이 가장 적합할 것 같습니다. 교육이란 단순히 지식을 이해하는 것으로 끝날 수 없는 것입니다. 배운 대로 살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큰 낭패를 불러올 것입니다.
알고 있지만, 충분히 이해하지만, 실천하기까지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묵상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 교육이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