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어둠에 길들어 버린 모습들을 청산한 새해를. / 요 8:12-19.

박성완 2020. 12. 31. 00:00

묵상자료 7168(2020. 12. 31. 목요일).

시편 시 119:113-116.

찬송 48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인공의 주인공인 남편에게> 단지 크게 아팠다가 수술 받고 무사히 돌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올해 우리 집의 신나는 뉴스의 주인공이 되다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는데, 저 역시도 많은 것을 깨달은 좋은 경험이었기 때문에 주인공이라는 사실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조용한 오후 작은 오두막집의 고요가 막 깨지는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한 그림 <파적도>, 그리고 그에 대한 소개 글, 저도 재미 잇게 읽었지요. 수술 후 회복기에 큰 부담 없이 읽으라고 동생이 사다 놓은 그림도 많이 들어간 읽을 거리였는데, 그림에 대한 설명들이 일상과 연결되어 있어서 신선했어요. 전에는 평소 도둑고양이가 병아리 한 마리를 냉큼 물고 달아나는 모습만 더 크게 눈에 들어왔는데, 누군가가 여기를 먼저 봐 주셔야 해요. 이렇게 설명해 주니까, 그제서야 부부의 동작이 눈이 가고 꼼꼼히 보지 않으면 묻혀버릴 평범한 부부애도 보이고 그러더군요. , 이래서 전문가 안내자가 중요한 것이구나 했지요. 그런데 인생의 중요한 대목을 짚어주고 발견할 수 잇게 도와주는 전문가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안내인은, 아마 우리의 경험들이 아닐까 싶더군요. 몸이 심하게 아프던 순간 그리고 수술실에 실려 들어갈 때, 병원 복도와 낮은 천정이 불러일으키던 공포감, 깨어나서 수술이 성공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행복감, 이런 경험들 하나하나가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인생의 구석진 곳,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넘겨버렸던 중요한 지점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도와주었지요. 입원해 있는 동안 꼬박 병실의 불편한 침대를 지켰던 당신이나, 퇴원을 축하한다는 글과 그림으로 거실을 장식해 주었던 아이들이, 제 삶의 주인공이라는 거. 그런 경험 덕분에 제 일 실감할 수 있어서 저도 참 좋았어요. 내년에도 우리 가족 모두 서로가 서로의 주인공이 됐으면 해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1231일 방송> b.

 

2.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19)”을 읽었습니다. 전형적인 계시복음의 한 구절입니다. “나는 00 이다.”는 형식의 문장을 계시문구라고 부릅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주님께서 스스로 이를 밝히셨기 때문에 소위 주님에 관해 감추었던 것들이 들어났다는 의미로 계시의 복음인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주님께서 빛이신 것을 알 뿐 아니라 믿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빛의 반대말은 어둠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사물에 대한 인식을 직관을 통해서 가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빛은 안전과 평안 그리고 기쁨과 가능성 등으로 이해합니다. 그와 반대로 어둠은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슬픔과 절망 등으로 이해합니다. 우리가 어둠을 멀리하고 빛을 갈망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들 인생의 현실은 어둠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소극적이다 못해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태도로 살고 있습니다. 제가 전도사 시절에 교우였던 분을 최근에 만났습니다. 45년 만에 소식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저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때 자신의 신앙생활은 어두움과 맞서는 유일한 힘을 주었다고 추억했습니다. 마치 캄캄한 밤중에 더욱 빛을 발하는 새벽 별처럼 말입니다. 배고픔과 추위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절망을 얘기할 자격이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기도나 그때의 희망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빛이었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빛이신 주님은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 관해서 말씀하십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들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판단하기를 좋아합니다. 엊그제 도봉산 둘레길 산책을 다녀 돌아오는 차중에서 한 중년 여인이 길을 건너를 것을 보았습니다. 신호등이 정지 신호로 막 바뀌는 찰나에 건널목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호등이 바뀌었는데도 아직 중간쯤도 도착치 못했습니다. 그 여인을 바라보면서 저는 저도 모르게 왜 저렇게 위험을 감수할까? 죽으면 어쩌려고?” 하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런데 많이 익숙한 듯한 그 여인은 건너편 안전지대 앞에서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그 여인의 모습에 제 모습이 겹쳐지는 걸 느꼈습니다. 저도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왔으니 말입니다. 어둑어둑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일지 모릅니다. 그렇게 위험천만한 일을 해도 용케도 잘 넘어갈 수 있었다는 경험이 축적돼 있었던 것입니다. 밝은 세상에서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큰 잘못입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눈감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밝아오는 환한 2021년 세상에서는 그래선 안 되는 일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