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길을 벗어나지 말고 똑바로 걸어가라. / 요 5:1-15.
묵상자료 7177호(2021. 1. 9. 토요일).
시편 시 119:149-152.
찬송 37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슬람 달력으로 아홉 번 째 되는 달을 라마단이라고 합니다. 라마단이란 타는 듯한 더위와 건조함을 뜻하는 말로, 금식으로 인한 타는 듯한 갈증과 고통을 상징하는데요. 라마단 금식은 한 달 동안 해가 뜬 후부터 해 질 때까지만 합니다. 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아무튼 가장 늦은 새벽녘과 해가 지고난 후에만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죠. 그것도 배고픔만 겨우 모면할 정도로 매우 적은 양입니다. 이렇게 한 달이란 긴 시간동안 다같이 금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의 나약함을 제압하자는 의도에서 출발했습니다. 약속 중에서 가장 지켜지지 않는 약속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죠. 따라서 한 달간 금식을 해야 하는 라마다는 그런 나약한 나를 제압하고 단련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마단이 끝나는 날, 한 달간 배고픔을 잘 참아낸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며, 배고픈 자들을 이해하게 된 자신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이슬람 학자들은 이런 라마단을 하나님과 자신과의 은밀한 약속이며, 나 자신과의 싸움을 시험하기 위한 아름다운 장치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자신에게는 그렇수도 있지 하며 너그럽고, 타인에게는 그래서는 안 되지, 이렇게 엄격한 사람들에게는 생각을 바꾸게 하는 아름다운 장치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4년 1월 15일 방송>
2.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1-15절)”을 읽었습니다. 종합병원을 방문해 보신 분들은 각종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 넘치도록 많이 몰려와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랄 것입니다. 예수님이 찾으신 베데스다 못에는 물이 끓어오르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베데스다 못에는 오래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끓게 할 때 맨 먼저 물에 뛰어드는 사람은 무슨 병이든지 다 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주님은 38년이나 된 병자를 만나 “낫기를 원하느냐?” 고 물으셨을 때, 그는 물이 끓을 때 자신을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물에 들어갔었다고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이런 얘기를 듣노라면 참 딱해서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38년 동안을 못가에서 울부짖기만 했을 그 사람을 잘 보아왔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누굴 탓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병이라도 자신이 먼저 낫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니, 그게 세상 인심이고 세상살이이니 말입니다. 주님은 이런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요를 들고 걸어가라.” 그 말씀 한 마디에 38년 된 환자는 일어났고 걸어갔습니다. 병이 나은 것입니다.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아귀다툼하듯 앞 다퉈 서로 먼저 살아보겠다는 세상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주님은 그 한복판에서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까? 이웃 사랑의 바탕에 무엇이 깔려 있어야 하는지를 암시하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입니다. 그런데 이런 깊은 묵상이 필요한 자리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경건을 흉내 내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바로 그 날이 안식일인 점을 확인시켜 줍니다. 안식일에는 절대로 할 수 없다는 39가지 보조 율법이 있는데, 이는 안식일을 더욱 거룩하게 지켜보려고 만든 보조 율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보조 율법이 법의 정신을 강조하기 보다는 문자적으로 해석되는 악법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오늘날도 여전히 법을 그 정신에 따르려 하기 보다는, 법의 역기능 곧 법을 악용하려는 추하고 더러운 시도들이 인간들 속에서 꿈틀거린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이 허기를 달래려고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타작이라는 노동으로 해석하고, 우물에 빠진 양을 살려내는 것을 무화과 한 알 크기를 들어서는 안 되는 문자에 대입 해석한 것입니다. 그들은 병에서 해방된 그 사람까지 율법의 올무에 걸려고 하였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주님은 후에 그 고침 받은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입니다. 죄란 목표를 빗나가는 일체의 것으로, 사람이 제 길을 벗어나면 모두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