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기도생활을 할 것. / 막 9:14-29.
묵상자료 7205호(2021. 2. 6. 토요일).
시편 시 130:4-8.
찬송 48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꽃밭 매던 호미를 놓고 떼어 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글씨는 가늘고 글줄은 많으나, 사연은 간단합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글은 짧을지라도 사연은 길 터인데.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바느질 그릇을 치워놓고 떼어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나에게 잘 있느냐고 만 묻고, 언제 오신다는 말은 조금도 없습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나의 일은 묻지 않더라도 언제 오신다는 말을 먼저 썼을 터인데.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약을 달이다 말고 떼어보았습니다. 그 편지의 당신의 주소는 다른 나라의 군함입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남의 군함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편지에는 군함에서 떠났다고 하였을 터인데. 한용운 님의 <당신은 편지입니다> 이 시에 숨어 있는 의미, 그것은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특별한 눈이 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마음, 들키지 않으려고 숨기는 마음, 그 마음까지 볼 수 있는 특별한 눈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월 20일 방송>
2. “악령에게 사로잡힌 아이(14-29절)”을 읽었습니다. 쉬운 우리말로는 “귀신 들린 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내몽고에 선교차 들렸을 때, 현지인 교회 전도사님이 한 여자 청년을 예배에서 소개하였습니다. 얼굴은 곱게 생겼는데, 악마에 붙들려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몸과 마음은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외부적이건 내부적이건 이성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 정신 줄이 끊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생활이 쪼들리는 열악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가르치는 성경학교에 찾아온 시골 전도사님 역시 정신이 왔다 갔다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한 소년은 정신병을 앓는 것이라고 보다는 육체적으로 이상증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현대의학에서는 뇌전증이라고 부르는 속어 지랄병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멀쩡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땅에 쓰러지면서 몸을 비틀고 거품을 입에 물고 몸을 떠는 보기 흉한 병입니다. 요즘은 보기 힘들어져 다행이지만, 20, 30년 전만 해도 제 주변에 이런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저의 고향 이웃집 아들도 제가 가르치던 신학교의 학생도 그리고 교회 실습을 하던 전도사도 그런 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예방약이 있어서 몸이 허약하고 기미가 보이면 미리 복용하고 피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환자를 만나시게 된다면 거품 등으로 무서울 수 있으나, 편안하게 눕혀서 안정을 취하면 몇 분 후에 아무 일 없었던 모양으로 일어나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으니, 이렇듯 깔끔하게 반전될 수 있다는 뜻에선지 장미병(薔薇病)이라고도 부릅니다.
아무튼 우리 세대에는 근본적인 치료는 안 된다 해도 최악의 상황은 피해갈 수 있는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어서 다행이지만, 2천 년 전에는 우리 인간들에게는 불치병이었던, 그래서 악마에게 붙잡혔다 해서 악령에게 조종을 받는다는 이름이 붙여진 질병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주님은 그 부모에게 언제부터 그랬느냐고 묻자 어릴 때부터였다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부모는 할 수 있다면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면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시고는, 악령에게 명을 내립니다. 그 아이에게서 썩 나와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아이가 발작을 일으켰고 주님이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자 정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를 본 제자들이 왜 우리는 악령을 쫓아내지 못하느냐고 물을 때, 기도하지 않고는 그런 것을 알 수 없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제자들처럼 질문하게 됩니다. 왜 우리는 이런 일을 할 수 없는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제자들이나 우리들이 어떤 문제에 빠져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문제 풀이를 우리들의 뜻과 힘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기도하라 하셨는데, 바로 그 말씀이 그 해답이었습니다. 주님의 은총을 구하고, 주님의 능력을 구하는 일이 기도라 할 때, 기도는 우리들의 무력함과 연약함을 고백하는 일이며, 동시에 주님의 놀라운 능력과 무한한 은총을 의지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고, 주님을 문제 풀이에 초대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기도 만능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우리들 인간의 뜻대로 되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한다는 점에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 중심적 기도만능이어서는 안 될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