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제일 높고 멋진 사람이란. / 막 9:30-41.

박성완 2021. 2. 8. 00:00

묵상자료 7207(2021. 2. 8. 월요일).

시편 시 132:1-4.

찬송 22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 그가 남긴 말 중에, 영국에서는 자유인이고, 해협을 건너면 6시간 만에 노예가 된단 말인가? 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남긴 이유, 그가 태어난 곳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였기 때문이지요. 평생 아일랜드와 영국 사이를 오가며 갈등을 겪어야 했던 스위프트, 그에게 하루는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일랜드에 동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런던의 한 상인이 영국 정부로부터 동전 주조 권을 얻어 아일랜드에 동전을 공급했는데, 그 동전은 구리나 청동으로 만들어진 값싼 것들이었습니다. 이 일로 아일랜드 사람들의 불만 날이 갈수록 커졌고, 스위프트 역시 화가 나서 영국 정부에 신랄하게 비난하는 글을 신문사에 드레피어라는 가명으로 투고를 했지요. 영국에서는 현상금을 걸고 이 드레피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스위프트의 글을 정리해 준 사람이 있었지요. 바로 스위프트의 집사였습니다. 하지만 스위프트는 사소한 일로 그 집사를 내 쫓았기 때문에 몹시 불안했습니다. 혹시 현상금이 탐이 나서 자신이 드레피어라는 것을 고발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쫓겨난 그 집사는 끝까지 입을 다물었고, 스위프트는 그게 고마워서, 수소문 끝에 찾아낸 집사에게 더 좋은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다고 합니다.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일에 감정을 개입하지 않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그 좋은 예를 스위프트의 드레피어의 편지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4222일 방송>

 

2. “수난에 대한 두 번째 예고(30-32)”, “누가 제일 높으냐?(33-37)” 그리고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38-41)”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오래 된 속담에 도토리 키 재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서로 잘 낫다고 다투는 것을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듯 도토리 키 재기 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면서 저 역시 유투브를 자주 들여다보는데, 우리나라와 이웃 일본과 중국에 관한 이야기들이 쉼 없이 올라오고 있는데, 참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더 잘 산다거나 더 선진국이라는 샘내기 차원이 아니라, 집단적인 미움이나 따돌림으로까지 번지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는 사람들도 예외 없이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이냐?”는 문제로 다투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까지도 참견하셨는데,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미국에서 특히 오바마 시절에 크게 강조되었는데, 뉴욕 할렘가의 청소년들에게는 대단한 파급효과를 가져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역시 1등 제일주의를 벗어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반절의 성공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왜 성공해야 하는지, 왜 부자가 되어야 하는지, 1등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정한 목적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은 꼴찌로 내려가서 모든 사람들을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공하는 진정한 이유, 부자가 되어야 할 참된 이유는 섬기는 사람이 되기 위함이라고 말입니다.

   1978년에 저의 부산 성경반에 한 미국인 목사님을 강사로 모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한국의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두 한국 아이를 입양해서 미국을 오가며 끝내 고치시고 그들을 훌륭하게 길러낸 분으로 귀감이 되어서 자녀 교육에 대한 강의를 부탁드렸습니다. 지금도 인상적인 말씀이 떠오르는데, 밑면이 넓은 삼각형의 꼭대기에 오르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밑면이 꼭짓점이 되는 모든 것을 다 떠받치는 자리로 내려간 그런 삶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구유에 오신 까닭이고, 문명의 변방인 갈릴리를 무대로 활동하신 모습이라고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한 어린 아이를 앞에 세우시고,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를 주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주님을 받아들임은 물론 하나님까지도 받아들이라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헛소리처럼 외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볼품없는 한 어린 아이를 소중하게 그리고 인격적으로 돌보는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배워야 하고 일해야 합니다. 그 진정한 목적은 우리 주변의 연약한 이웃들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눈에 보이는 힘없는 이웃들을 사랑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 힘에 알맞은 그런 이웃들을 사랑의 눈으로 살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