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 / 막 10:17-31.
묵상자료 7210호(2021. 2. 11. 목요일).
시편 시 132:11-12.
찬송 2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는 여러분이 이제 곧 받게 될 학위 이상으로 신성한 소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과 신성한 계약을 맺은 것입니다. 우리가 창조된 목적의 본질에 따르면, 우리는 단지 정자와 난자의 만남으로만 태어난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실을 의식하고 있든 아니든, 그 소명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소명을 실천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 대해 여러분 스스로 꾸는 꿈보다 더 큰 꿈을 갖고 계십니다. 그 꿈,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꿈 앞에 복종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은 달라질 것이고, 여러분의 상황과 환경도 달라질 것이라고 스스로 결심한다면, 바로 그 때부터 여러분의 인생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창조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권위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사고와 감정, 행위를 통하여 여러분의 삶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게 됩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습니다. 모든 일은 누구에게나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학위를 받는 여러분이 부디 그 소명을 인식하기 바랍니다. 자신에게서, 그리고 여러분이 마주치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서 찾고 구하고 불러내야 하는 소명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그리고 그 소명에 감사하십시오.
오프라 윈프리, “신성한 소명을 발견하라”[세상을 다 가져라], pp. 37-38.
2. “부자 청년-낙타와 바늘귀(17-27절)”과 “백 배의 상(28-31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부자와 빈자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구구한 얘기들이 오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막연하기는 하지만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을 기준으로 가를 수도 있을 것이고, 정미경의 단편 <아들의 연인>에는 부자 아들과 빈자의 딸이 사귀는데, 아들은 “헤어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라고 말을 하는데, 어느 날 일기에 “우리가 다르다는 걸 느낀다.”는 글과 함께 헤어집니다.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지금 당장 돈이 적어도 부자가 될 가능성은 있고, 반대로 가난해질 가능성은 있는데, 그것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달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자선단체에서 글을 요청했을 때, “부자처럼 살자.”는 제목의 칼럼을 보냈던 적이 있는데, 부자는 나눠줄 것을 가진 사람으로 행동하는 것이고, 빈자는 끝없이 움켜쥘 것 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풀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 예수님께 영생을 구하는 사람은, 이런저런 계명을 잘 지켰다고 단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심각한 사람으로 낙인찍힌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웃을 전혀 돌보지 않은 진짜 가난뱅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참된 부자의 길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이 일화가 있은 다음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일화를 소재로 유명한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입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게 더 쉬울 것이라고 하였으니 말입니다. 대체로 돈과 재물을 금고에 가득 채워두는 사람은 이미 이런 부자군(群)에 속한 것이라 전제할 수 있습니다. 평생 이기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 하루아침에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 대해 손을 내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작가 찰스 디킨스는 평생 수전노로 피도 눈물도 없이 돈을 모으는 데만 힘썼던 스쿨이지가 어느 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자신의 동업자였던 말리의 유령이 꿈에 나타나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것에 충격을 받아, 성탄 아침에 가난한 자들에게 통 큰 자선을 베푼다는 따뜻한 이야기를, 오늘의 부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엄청난 기부자가 되라는 말도 아니고, 봉사활동에 전념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자신의 삶에 들어온 이웃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이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 하겠습니다. 누구나 벅찬 삶의 무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짊어질 뿐 아니라, 함께 땀 흘리는 이웃들에게도 눈길을 주면서 살아가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물을 쌓아두는 것은 주님 앞에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옳지 못한 태도였던 것입니다. 천국은 서로 손을 내밀고 잡아주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이좋게 사는 나라인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