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와서 보라. / 요 1:43-51.

박성완 2021. 2. 20. 00:00

묵상자료 7219(2021. 2. 20. 토요일).

시편 시 135:13-14.

찬송 32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인이 화가의 모델을 하다가, 앉은 채로 깜빡 잠이든 모습이 더 자연스럽고 고단해 보이는 건, 두터운 옷차림 때문만은 아닙니다. 옆에 놓인 바구니와 그녀가 손에 든 빵은, 그녀가 빵을 팔거나 나르는 일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케 하지요. 프로 모델 같지는 않은 소박함과 소탈함이 느껴지는 겁니다. 그렇게 앉은 채로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 잠에 빠진 모델 앞에서, 화가는 난감한 표정입니다. 깨우자니 너무 곤하게 졸고 있고, 그냥 두자니 그림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그가 거의 다 그린 여인의 모습은, 조는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정면을 보고 있는 세련된 모습이지요. 과연 화가가 그녀가 저절로 깨기를 기다릴지, 아니면 그림도 그림이지만 어깨가 아니라, 몸까지 기울어서 의자째 옆으로 나뒹굴지도 모르니, 안 됐지만 깨울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읽었던 누군가의 일화도 생각납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어느 정거장쯤에선가 졸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한참을 자고 깼다 싶은데도, 그 정거장 그대로입니다. 자신이 아주 짧게 잤던가, 아니면 길이 엄청나게 막혔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자세히 보니 버스는 반대편 정류장에 서 있었습니다. 어느 새 종점까지 갔다가 되돌아와, 맞은편에 선 것이었지요. 깜빡 존다는 게 그렇게 긴 잠이 되거나, 코고는 소리까지 나 버리면, 당황스럽기 마련입니다. 놓친 정거장이며 주위 사람 보기 창피한 거며, 참 당황스럽지요. 하지만 때론 그 덕분에 새로운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듯, 몸과 마음이 개운해 지기도 하니, 졸음과 피로도 잘 쓰면 오히려 좋은 회복제가 되는 듯도 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220일 방송>b.

 

2.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시다(43-51)”을 읽었습니다. 빌립은 벳새다 출신으로 안드레와 시몬과 같은 고향 마을 사람입니다. 그를 주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예언서에 기록된 그분(메시아)를 만났다고 하니,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고 반문하자, 그는 와서 보라고 권하였습니다. 이 빌립의 말은 훗날 전도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전도 용어가 되었습니다. “와서, 보라.” 주님을 찾아 와서 주님을 만나 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현대에는 교회에 와서 우리 목사님을 만나 보라는 말이 된 것입니다. 이런 전도에 나다나엘은 말로는 나사렛에서 무슨 신통한 인재가 나올 것이냐고 했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주님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주님은 그를 보시고 이 사람이야말로 참 이스라엘 사람이며, 그에게 거짓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님과 나다나엘 사이에 대화가 시작되었고, 빌립이 너에게 말하기 전에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그를 보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오래 전부터 주님은 나다나엘에 대해서 주목하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것을 보셨다는 말씀은 매우 암시적인 말로, 나다나엘과 주님만이 아시는 내밀(內密)한 의미를 가졌다 하겠습니다. 이로써 나다나엘의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렸고, 그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고백합니다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 제가 살던 마을에 통일교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청년을 교회 앞에서 만났는데, 교회에 다니느냐고 묻고는 얘기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변으로 나가서 성경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라는 고전 13:12을 암기하면서, 구약(舊約)이 충분치 못해서 신약을, 신약(新約)이 부족해서 성약(成約) 시대가 되었다면서 통일교에 와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뜻밖의 얘기였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해서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만일 우리 교회에 와서 우리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라고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을 어리석게 하는 것 중에는, 이렇듯 낯선 얘기로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는 자신들의 주장을 펴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훗날 문선명의 원리강론과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예수는 구원성취를 못하고 죽었지만 자신은 죽지 않고 구원을 이룰 것이라 장담을 했였는데, 그 역시 201293. 92세를 일기로 가평 땅에 죽어 묻혔습니다. “와서, 보라.” 모든 크리스천이 이 말의 의미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