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인격 모두 귀감이 된 세례자 요한. / 요 3:22-36.
묵상자료 7225호(2021. 2. 26. 금요일).
시편 시 136:7-9.
찬송 50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퇴근 시간이 넘었는데도 차가 많이 막혔다. 무심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순간 탄성을 질렀다. 어둠 속에 솟아 있는 건물의 지붕 선은 어린 왕자의 고깔모자와도 같이 길고 비스듬히 삼각형이었는데, 그 끝에 커다란 별 하나가 반짝반짝 빛을 뿜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건축가가 저리도 아름다운 상상력을 지녔단 말인가? 그는 아이처럼 행복해졌다. 건물의 쓸모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려는 마음으로 저 높은 곳까지 별을 띄운 건축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그는 그 건물을 더 잘 보기 위해 가까운 쪽으로 돌아서 가기로 했다. 그날 저녁 그는 보았다. 서울 하늘아래 가장 아름다웠던 그 별은, 실은 아파트 공사현장의 타워크레인 끝에 위치한 한 개의 조명등에 불과했다는 것을. 수필가 최민자는 크레인 끝에 달린 조명을 건축가의 상상물이라고 깜빡 속았다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에 빗대어, 사람에게나 사물에게나 그것이 가장 근사해 보이는 적당한 거리가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 첩첩히 두른 산의 능선은 멀리서 바라보아야 운치가 있고, 외로운 사람의 눈에 띄는 들꽃은 가까이 다가가 보아야 돋보인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아마도 하나님은 구름 너무나 인간의 마음속이 아니라, 스카이라운지의 높이쯤에서 내려다보고 계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바라보기에 딱 알맞게 정말 근사해 보이는 높이에 계시기 때문에, 세상을 심판하지 않는 거라고 말이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월 27일 방송>
2. “세례자 요한의 마지막 증언(22-30절)”과 “하늘에서 오시는 분(31-36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요한복음서 기자는 세례자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의 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있었던 논쟁을 환기시키는데, 그 내용은 정결예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바리세파 사람들과 예수님 사이에 손씻지 않고 떡을 먹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두고 논쟁을 벌인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막 7:1-9). 그때 예수께서는 신앙생활에서의 본질적인 문제와 비본질적인 문제를 언급하시면서, 정결례와 같은 것은 비본질적인 것임을 명확히 구분하셨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본질적인 것보다는 비본질적인 것에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참으로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회 역시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주초(酒草) 문제가 그렇고 제사 음식을 먹는 것도 그런 문제에 속합니다. 저의 고향 교회 형님 한 분은 담배를 피웠다는 죄목으로 몇 차례나 수찬금지를 당했습니다. 니코친에 인 박혀서 자신의 의지로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교회 안에서 음란죄를 저지른 것을 눈감아 주었다니, 본질과 비본질의 구별조차 되지 않는 결정입니까?
오늘 본문에는 요한의 제자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곧 요한이 증언했던 그 예수라는 분이 세례를 베풀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에게로 몰려가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충분히 라이벌로 의식하게 하는 민감한 정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매우 일관성 있는 대답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세례자 요한이 처음부터 주장해온 자신은 메시야가 아니고 그 메시아이신 예수를 앞서 사명을 띠고 온 사람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는 이 사실을 직접 들은 증인들임을 확인시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세례자 요한 자신 뿐 아니라, 그의 제자들까지 모두가 세례자 요한이 예수의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꾼임을 증언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로써 세례자 요한은 신앙과 인격의 골격이 남다른 분이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동시에 저마다의 생의 소명에 충실해야 하는 과제 앞에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인기인으로써 최대한의 수혜자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야인의 길을 택했으며, 오늘 본문에서처럼 자신의 인기를 가로채는 듯한 형편에서도 흔들림 없이 초지일관한 그 신앙이 돋보이는 모습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3. 어제 용문행 전철 독서여행을 가졌는데, 소설가 한 강씨의 <흰>을 단숨에 읽었습니다. 자전적 이야기를 짧은 주제로 풀었는데, 현장감이 농익어서 감동을 주기에 족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