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하나님을 보고 만날 수 있는 방법. / 요 5:19-29.

박성완 2021. 3. 4. 00:00

묵상자료 7231(2021. 3. 4. 목요일).

시편 시 136:22-24.

찬송 41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내가 원하면 언제든 나에게 젖어드는 영원한 애인, 그래서 내 가슴속으로 내 몸속으로 들어와 나의 곳곳을 어루만져서, 고통의 늪을 건너 이내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영원한 애인이 있어야 한다고 시인 강무강을 이야기합니다.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 영원한 애인이 바로 한 잔의 차라고 했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죽어가는 염치없는 생각들, 어찌하면 이러한 것들로부터 해방되어지나. 골똘히 연구하면 할수록, 계산만 더해지는 한심스런 영혼, 목마름, 갈증, 감각, 허망. 그래서 벗어나고자 애쓰면 더 깊이 허우적 된다. 그냥 끌어안자. 그냥 이 속에서 놀자. 영원히 변하지 않는 애인, 내가 주면 준만큼, 내가 원하면 원한만큼, 언제나 만날 수 있고, 언제나 볼 수 있고, 언제나 기대고 만지고 끌어안을 수 있는 애인. 절대로 배반 같은 것은 꿈에도 없는 화투 같은 애인. 욕망에 시달릴 아무 걱정 없는 애인. 손만 뻗으면 언제라도 달려와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애인. 이런 애인이야말로 현실과 이상을 조화롭게 해주지 않겠는가? 문학 음악, 연극, 영화, 자연. 내가 원하면 언제든 달려와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영원한 애인들입니다. 이 중 이미 하나를 취한 사람에게는 늘 세상이 아름다울 겁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36일 방송>

 

2. “아들의 권한(19-29)”을 읽었습니다. 초대 기독교회가 직면했던 가장 큰 위기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를 이해하는 일이었습니다. 유일신이시며 무형이신 하나님을 믿는 그들로써는 유형으로 오신 예수님을 이해하고 진술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도 이 주제를 설명하는 것이 전도자들에게는 가장 큰 곤욕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유대인 지도자들을 향한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리고 뜬금없이 하신 말씀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자주 던졌던 질문에 대해서 대답처럼 하신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잘 들어 두어라.”(19, 24)는 말씀을 매번 하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따를 뿐이다.”고 말입니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듯 아들도 사랑하는 것이며, 아버지께서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시듯 아들도 똑같이 그리 하시며, 아버지께서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듯 아들도 살리고 싶은 사람을 살린다고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볼 수도 없는 하늘 아버지를 당신 자신을 통해서 보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매우 당당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존경하듯 아들도 존경해야 마땅하니, 아들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그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금과옥조처럼 생각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서로 나눠진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사람의 눈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입으로만 하나님 사랑을 외칠 뿐 실제로는 하나님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게 올바른 관찰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우리들 곁에 살고 있는 이웃들입니다.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사랑하고 도울 수 있을 때, 하나님이 항상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들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 본 일이 있는 사람은 자기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기쁨과 행복을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참된 자신의 행복이 익어가는 것임을 체현(體現)하기 때문입니다. 개소리 한다고 농을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요즘 제가 아산에 내려올 때는 심심하지 말라고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옵니다. 그런데 얼마나 케미가 잘 맞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을 뺏긴 것 같다고 야단입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가려울 것 같다며 손과 발이 닿지 않는 곳들을 수시로 긁어주고, 마실 물을 깨끗한 것으로 자주 바꿔주고, 먹을 것도 이것저것 배려해서 잘 챙겨줍니다. 이전에 누구에게도 해 보지 못한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들 인간을 돌보시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차원이 다른 사랑으로 우리들 삶의 하나하나를 살피시고 도우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