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을 신앙에 연결하는 기적들. / 요 8:48-59.
묵상자료 7240호(2021. 3. 13. 토요일).
시편 시 139:5-7.
찬송 46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게으름에 대한 하늘의 보복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실패, 또 하나는 그가 하지 않은 일을 한 옆 사람의 성공이다. 무엇이든 마구 잘 되어갈 때가 있다. 놀라지 말지어다. 끝까지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니까” 줄 르나르가 남긴 말입니다. 르나르는 47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입니다. 우리에게는 [홍당무] 그리고 [포도밭의 포도재배자] 라는 작품으로 친숙한 작가인데요. 특히 [홍당무]는 작가 자신의 성장 소설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슬프고 괴로웠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써 나간 작품이, 그에게는 작가로써의 명성 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훗날 르나르는 [홍당무]를 쓰고 나서 어머니에게 자기를 이토록 힘차고 자립심 강하게 길러 주어서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또 하나, 어두웠던 어린 시절은 그에게 신랄하고 예리한 풍자와 감각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가 남기고 간 짧고도 깊은 이야기들이 많은데요. “인간은 머리를 하늘로 두는 동물인데, 자기 천장의 거미줄을 보지 못한다. 타인의 결점을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는 것은 우리들 자신에게도 그런 결점이 있기 때문이다. 코감기는 어떤 사상보다도 훨씬 많은 고통을 준다. 좋은 말 한마디는 많은 책 중의 한권보다도 더 낫다. 행복이란 찾아 나서는 일이다.” 어린 시절에 애정 결핍으로 겪었던 비참한 기억은 평생 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또 르나르는 평생 그걸 감추며 애쓰며 살았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년 2월 11일 방송>
2.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계신분(48-59절)”을 읽었습니다. 복음서는 역사적 예수의 말씀과 삶을 네 명의 기자들에 의해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위 진리라고 불리는 중요한 말씀들은 대부분이 유대인들과의 토론 혹은 논쟁을 통해서 소개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도 이런 범주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삶 혹은 행적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가사이한 장면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적을 행하는 장면들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이 보이는가하면, 슬퍼하고 낙담하는 장면을 통해서는 보통의 인간을 보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를 궁금하게 여긴 유대인들은 솔직하게 문제를 파고들곤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혼란을 느끼고 이를 문제시하게 됩니다. 바로 “내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는 말씀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마귀 들린 사람, 귀신들린 사람이라고 막말을 퍼부은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날을 보고 싶어 했고 보고는 기뻐했다고,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당신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예수님 보다 무려 2천 년 전에 활동했던 인물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는데도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2천 년 전의 인물을 두고 서른 살을 갓 넘긴 젊은이가 자신을 보기를 원했고 보고는 기뻐했었다고 얘기할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들이 했던 말, “귀신 들린 사람”이라는 표현이 제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도 예수님은 당당하게 자신은 거짓말 장이가 아니라고 항변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해되실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예수께서 육신을 가진 분으로써 동시에 신성을 가진 분이심을 말씀하는 대표적인 구절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대목, 곧 신앙의 영역이라고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신앙을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 겪게 되는 장벽입니다. 그래서 신앙을 가르치는 이들은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측과, 이성과 신앙의 영역이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함을 이유로 믿음을 강조하는 측으로 나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과 대척점에 있던 사람은 물론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할 때, 주님은 그들 앞에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심으로 믿음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인간들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이성을 초월하는 기적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결국 기적이란 이성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믿음에 이르게 하는 도구였던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