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1. 사순절 다섯째 주일] 신앙의 가치와 세속적 가치의 차이. / 막 10:35-45.
묵상자료 7248호.
시편 시 140:4-5.
찬송 52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제 춘분에 비가 좀 내렸지요. 그러면서 좀 스산한 기운이 아침 감돌고 있습니다. 어제 꽃 집 앞으로 지나다가 누군가가 화분과 꽃삽을 사는 것을 보고, 아, 저 분은 삶의 참 즐거움을 만끽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꽃씨를 사다가 화분에 심어보고, 또 그 화분에 물을 주고, 봄 마다 찾아오는 충동인데, 몇 해 동안 그 일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올 봄에는 꽃씨 나무를 심는 일 꼭 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 같은 춘분쯤이 농가에서도 씨를 뿌리고 농사를 시작하기에 좋은 때라고 하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년 3월 22일 방송>
2. 사순절 다섯째 주일의 복음서 말씀 막 10:35-45을 본문으로 “신앙의 가치와 세속적 가치의 차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무엇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느냐를 두고 가치관이라고 합니다. 이런 가치관에 따라서 우리들 삶의 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고, 삶의 목표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하십니까?
바람직한 가치관을 세우기 위해서 교육이 필요합니다(35-40절).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을 찾아와서 소원을 들어달라고 했습니다. 그 소원이란 예수님이 높은 자리에 앉게 되실 때, 자신의 두 형제를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소원은 그들의 부모님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마태복음서는 말씀합니다(마 20:20). 일반적으로 부모님들의 가치관은 세속적인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피하기 힘든 영향입니다. 높이 자리로 올라가고,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머리가 되는 일이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이런 가치관은 설익은 과일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 자체가 진정한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고, 오히려 더 크고 힘든 과제를 실천해야 하는 때문입니다. 높은 자리에서 실행할 일들, 많은 소유를 가지고 해야 할 일들, 머리가 되는 사람들이 짊어질 무거운 멍에들을 배우고 깨닫는다면 쉽게 꿈꿀 수 있는 가치관이 아닙니다.
다른 열 제자들 역시 동일한 가치관을 갖고 있었습니다(41-42절).
우리 인류의 역사가 연륜을 쌓아가면서도 쉽게 고치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변하지 않는 잘못된 가치관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손자는 장군, 우리 손자는 대통령”이라는 할머니의 꿈들입니다. 이런 희망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닙니다. 장군을 꿈꾸게 한다면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용감한 성품을 길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대통령의 꿈을 꾸게 한다면 역사의 경륜을 잘 배우고 백성들을 진심으로 섬기려는 덕성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그런 과제를 수행하지 않고서 실체가 없는 헛바람만 불어넣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제가 중국에서 만난 한 조선족 여중생은 자신의 꿈이 반기문유엔 사무총장처럼 국제무대에서 일하는 꿈을 꾼다하였습니다. 그래서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세계 각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해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신앙적 가치관은 위로 오르는 게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는 것입니다(43-45절).
오래 전 저의 신학대학원 강의실에서 한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어찌하여 신학교에서는 삼성 신입사원처럼 훈련시키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역 광장에서 목청을 돋우어 삼성 제품을 사 달라 외치는 그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은 이해관계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악을 쓰지만, 신앙관계 앞에서는 인격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주님은 섬김을 받는 삶이 가치가 있지 않고, 반대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가치있는 삶이라고 말입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 평생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섬기며 사셨던 그 까닭을 주목해야 합니다. 평화의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비결은 섬김을 받는 가치가 아니라, 섬기는 가치로 이룩할 수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