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함께 기뻐하고 함께 눈물 짓는 이웃으로 오신 예수. / 요 11:28-44.

박성완 2021. 3. 27. 00:00

묵상자료 7254(2021. 3. 27. 토요일).

시편 시 141:6-8.

찬송 47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닻을 맬 항구가 없고, 시간은 가 닿을 강기슭이 없는 것, 모든 것은 흐르고 우리들은 그렇게 사라져간다.” 알퐁스 드 라마르틴이 남긴 말입니다. 라마르틴은 1869년에 79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시인이자 정치가입니다. 라마르틴은 루소와 샷도 브리앙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고요. 19세기 초 프랑스 문단의 낭만파 문학운동에 꽃을 피운 서정 시인입니다. 또 시인이자 정치가라는 특별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기도 한데요. 귀족이었던 아버지는 라마르틴이 군인이나 외교관이 되기를 원했으나, 아들 라마르틴은 나폴레옹 집권하의 공직에 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라마르틴은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내다가, 부르공 왕정이 복귀했을 때, 비로소 루이 18세의 호위병으로 들어가지만, 곧 군인이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문학에 빠져듭니다. 하지만 이 또한 건강이 나빠져 요양하러 가는 바람에 이어가지 못했는데요. 이후 라마르틴은 요양지에서 폐결핵에 걸린 줄리엣 샤롯이라는 여인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 여인이 죽었을 때 쓴 시가, 바로 모든 것은 흐르고 우리들은 그렇게 사라져 간다.”라는 <호수>라는 시였는데요. 이 시가 발표되었을 때, 온 프랑스가 울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라마르틴은 또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슬픔은 어떤 기쁨보다 두 사람을 가까이 단결시켜주고, 일상적인 고달픔은 일상적인 즐거움보다 강한 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내 영혼의 그림자 속에는 감추어진 이름이 있다. 다른 어떤 사람도 읽을 수 없는 그 이름을 난 밤낮으로 읽는다.” “참 사랑이란 평생 익는 과일이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326일 방송>

 

2. “눈물을 흘리신 예수(28-37)”다시 살아난 예수(38-44)”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첫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흔히들 사람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는 예수는 미스터리한 인물로 생각되었습니다. “예수란 누구신가?”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초대 교회는 많은 혼란을 겪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니케아 회의(325)을 출발점으로 칼케돈 회의(451)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한 인격 안에 두 본성 곧 신성과 인성을 가진 분이라는 <기독론>이 정립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는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기둥위에서 파악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많은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죽은 나사로를 두고 누이동생 마리아와 그녀를 위로하려 찾아온 많은 주변 사람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바라보신 주님께서, “비통한 마음에 북받쳐 올랐다.”는 구절과 함께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문하러 온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나사로를 무척 사랑하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전합니다

   요즘 지상파 방송국(KBS, MBC, SBS)을 제외한 위성방송 3곳에서 예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전원일기>가 재방송되고 있는데, 본방(本放)을 제대로 시청할 수 없었던 저는 채널을 바쁘게 돌려가며 <전원일기>를 시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우 평범해 보이는 주제와 내용인데도 눈시울을 붉힐 때가 많아졌습니다. 특히 대가족으로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이 이런저런 문제로 험악하게 다투다가도, 지혜로운 어른들의 가르침으로 한층 더 성숙한 가족관계로 회복되어가는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받곤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핵가족 시대에 파경으로 치닫는 서글픈 모습을 바라보면서, 옛날에 대한 향수를 금할 수 없게 합니다. 우리들 삶이란 복잡다단합니다. 그러나 저마다 분주하게 그리고 다양한 이유들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흔하게 생기는 것이 오해입니다. 오해란 전후사정을 잘 알아듣게 얘기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는 가벼운 문제들입니다. 그러나 그럴 기회를 도무지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엄청난 파경으로 치닫게 되기 일쑤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냇가에 빨래터를 만들어 놓고 동네 아낙들이 모여서 동네 사정을 주고받는 모습이며, 콩 밭의 잡초를 제거하려고 삼삼오오 모여서 품앗이를 하거나 천렵을 가거나 하면서, 가슴을 짓누르던 문제나 궁금증을 풀어갈 수 있는 해결의 장()이 있었던 그리운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로 발전하는 우리 시대가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가장 인간다운 우리의 이웃으로 우리들 곁에 오신 것을 느끼게 해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