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호산나의 주인공이실까? / 요 12:9-19.

박성완 2021. 3. 29. 00:00

묵상자료 7256(2021. 3. 29. 월요일).

시편 시 142:1-3.

찬송 13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인간은 타고난 재능에 있어서 평등하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같은 환경에서 같은 목적을 추구했다면 누구라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데니 데드로가 남긴 말입니다. 데드로는 1713년부터 1784년까지 71년을 살다간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문학가입니다. 그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주의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인데요. 백과전서 편찬에 평생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데드로는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장남이었던 그와 여동생 그리고 막내 남동생만 살아남았습니다. 여동생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고, 남동생은 형이 신앙을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가장 부끄러워할 정도로 독실한 신부였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미워하지는 않았으나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가 되였지요. 당시 존경받던 도공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이 성직자가 되기를 원했는데요. 데드로는 이런 가족들의 뜻을 따르려고 했지만 포기하고 성직자들의 설교 문을 써주면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그를 몹시 못 마땅하게 여겼지요. 데드로 역시 아들에게 분노한 아버지를 볼 때마다 자책감에 빠져서 괴로워했습니다. 이런 데드로의 삶은 행복과 인생에 관한 뜻깊은 구절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훌륭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단지 위대한 정열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수많은 타인의 행복을 먼저 생각해 주는 사람이다. 결코 후회하지 말며, 남을 비난하지 말라. 이것이 지혜의 첫 걸음이다. 인간에게 단 하나의 의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327일 방송>

 

2. “나사로를 죽이려는 음모(9-11)”예루살렘 입성(12-19)”을 읽었습니다. 춘분이 지난 지도 일주일이 되어갑니다. 오늘 이곳 아산 기온은 섭씨 21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옆집 앞집 모두들 봄 채전에 심을 작물들을 고르느라 분주합니다. 아직 저희 집 목련꽃은 만개해서 화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선물로 주셨는데, 세상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스산하기만 합니다. 코로나19 백신을 국민 절반이상이 맞았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미국은 만 명에 육박하는 확진 자와 수백 명의 사망자를 보도하고 있고, 성추문으로 사퇴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보궐 선거는 온갖 흑색선전으로 유쾌하지 않습니다. 이런 판국에 오늘 우리에게 주신 묵상자료는 나사로를 죽이고 싶어 하는 종교지도자들의 얘기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미움이 커지면 살인으로 발전하게 마련인데, 나사로가 살아난 기쁜 일이 도리어 예수를 따르며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나사로까지 죽이려는 음모가 생겼다고 합니다. 우리 마음 한 자락에 미움이 깔려 있는지 뒤적여 봐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누군가를 미워한 잘못을 두고 회개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 묵상은 두 번째 단락 예루살렘 입성기사입니다. 유대 나라의 수도인 예루살렘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종교의 중심지라는 점에서 유대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도시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예수님 일행의 예루살렘 방문은 여러 가지 점에서 의미를 더해 주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사회 현상에 대한 관심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3년에 불과하지만,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한 시기였다는 점에서 주목하게 됩니다. 한낱 변방에 불과한 갈릴리 호수 주변의 작은 시골 마을을 오가며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떼 지어 몰려다녔던 것은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는 등의 기적이 일으킨 돌풍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주인공인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었으니, 예루살렘 지도자들에게는 긴장을 갖게 했을 것입니다. 둘째는 종교 현상에 대한 비상한 관심입니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셨습니다. 8복의 말씀을 포함해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는 종교 지도자들의 현실에 대한 냉담함과 무관심을 신랄하게 비판하셨습니다. 그러니 이런 사회 현상과 종교 현상을 지적해온 예수의 행태가 예루살렘 방문으로 뭔가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유대 사회가 관행처럼 익히 알고 있던 유명인의 행차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서 또 한 번 긴장할 수 밖이었을 것입니다. 준마(駿馬)가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이며, 붉은 카펫이 아니라 소시민들의 겉옷이 깔릴 길이며, 외치는 연호에 사용한 호산나!”라는 말도 귀를 거슬리게 합니다. 호산나는 아람어로 우리를 구해 주소서!”라는 의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은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한 혁명가의 등장을 예고하는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예수님은 호산나의 주인공이신지 모르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